안홍진, “겨울 울릉도 향해 간절히 기도”…바다가 허락한 여정 #한국기행 #안홍진 #울릉도 #독도새우 #울릉칡소 #성인봉 #울릉군산악구조대 #EBS1
겨울 바다가 허락해야만 닿을 수 있는 섬, 울릉도의 한 겨울 풍경이 ‘한국기행’에서 다섯 편에 걸쳐 그려진다. 화산섬 특유의 험준한 지형과 거친 계절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이 각기 다른 여정 속에서 이어진다.
첫 번째 흐름은 울릉도로 향하는 관문, 경북 포항에서 시작된다. 울릉도행 배를 기다리던 배우 안홍진은 호미곶을 찾아 겨울 바다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이어 찾은 죽도시장은 갈치와 오징어, 고래고기 등 겨울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수산물로 가득 차 있으며,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상인들의 손길이 분주하게 오간다.
포항에서 시작된 겨울 항해, 아귀 수육 한 상과 크루즈 타고 울릉도로 향하는 길. (사진=EBS)
포항 항구에서는 한겨울 제철을 맞은 아귀를 싣고 돌아온 배가 시선을 끈다. ‘바다의 푸아그라’라 불릴 만큼 간이 커지는 시기, 배 위에 산처럼 쌓인 생물 아귀는 곧장 식당으로 옮겨지고, 사장님과 형제들이 이른 시간부터 소매를 걷어붙이고 손질에 나선다. 냉동이 아닌 생물로만 가능한 아귀 수육과 아귀찜, 아귀탕으로 차려진 따뜻한 한 상이 여행자를 맞이하며, 얼어 있던 몸에 온기를 더해 울릉도까지 이어질 밤 항해를 준비하게 한다.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영일만항에는 겨울 울릉도로 향하는 유일한 크루즈선이 대기한다. 망망대해를 단 한 척으로 건너야 하는 뱃길 위에서, 안홍진은 설렘과 긴장감을 안고 밤바다를 가르는 항해를 시작한다. 쉽게 열리지 않는 바닷길을 건너야만 닿을 수 있는 섬으로의 여정이 이렇게 첫 발을 뗀다.
울릉도에 선 뒤에는 섬을 한 바퀴 도는 버스 여정이 이어진다.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지형 탓에 길을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울릉도에는 1963년 첫 삽을 뜬 뒤 바다를 메우고 절벽에 터널을 뚫는 공사를 거쳐 2019년 총 44km 길이의 일주도로가 완성됐다. 안홍진은 이 일주 버스를 타고 섬을 돌아보며 파도와 바람이 깎아낸 바위들을 맞닥뜨린다.
차창 너머로는 태고의 비경을 간직한 풍경이 펼쳐진다. 세 명의 선녀가 내려앉았다는 삼선암,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한 코끼리 바위, 두 날개를 편 형상의 박쥐 바위, 영지버섯을 따러 왔다가 속아 내린다는 영지버섯 바위까지 각기 다른 이름과 사연을 지닌 바위들이 길을 따라 이어진다. 버스 기사들은 스스로를 가이드로 자처하며 바위마다 얽힌 전설을 들려주고, 여행자는 설명을 들으며 창밖 풍경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버스에서 내려 해안도로를 걷다가 만난 노부부는 겨울에만 허락되는 바다 일을 하고 있다. 울릉도에서, 그것도 한겨울 두 달 남짓한 기간에만 채취할 수 있는 긴잎돌김이 그들의 손에 들려 있다. 험한 파도로 한 달 중 일할 수 있는 날은 보름 남짓에 불과하지만, 부부는 추위를 잊은 듯 바위에 붙은 귀한 야생 돌김을 한 장 한 장 떼어낸다. 잠시 스친 인연에게도 곁을 내어주는 울릉도 인심 속에서 함께 딴 따개비로 끓인 따개비 칼국수 한 그릇이 차려지고, 한 그릇의 국물에는 울릉 바다의 겨울 기운이 담긴다.
겨울 울릉도의 또 다른 얼굴은 산에서 드러난다. 화산 활동으로 빚어진 산악 지형을 지닌 울릉도는 연평균 200cm 이상 눈이 내려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다설 지역으로, 겨울이면 산이 깊은 설원에 잠기며 등산로 흔적마저 사라진다. 절경을 보기 위해 섬을 찾는 등산객들의 발길은 이어지지만, 무릎까지 쌓이는 눈길은 아름다운 만큼 위험한 곳이 되곤 한다.
악산이어서 헬기 투입이 쉽지 않은 울릉도의 겨울 산에서는 울릉군 산악구조대가 119안전센터와 함께 구조 활동을 맡고 있다. 생업이 따로 있음에도 자발적으로 모인 대원들은 주기적으로 훈련을 이어가며 눈 덮인 산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1월 말, 중국 원정 훈련을 앞둔 신입 대원 신운영을 위해 구조대장 장민규와 대원들은 해발 984m 성인봉에서 동계 훈련을 진행한다.
선두 대원은 허리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새로운 길을 내고, 뒤따르는 이들은 밧줄을 설치하며 이동 구간의 안전을 확보해 나간다. 힘겹게 오른 성인봉 정상에서는 눈을 파서 동굴처럼 만든 보금자리, ‘설동’을 마련한다. 혹독한 날씨에도 설동 안은 영상의 온도를 유지해 주는 공간으로, 대원들은 그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겨울 산에서의 생존 훈련을 이어간다. 성인봉에서 나리분지까지 이어지는 이들의 하루는, 설국 속에서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의 땀방울을 보여준다.
울릉도의 겨울 맛을 보여주는 여정도 이어진다. 오징어 배로 유명한 저동항에서 안홍진은 또 다른 진미를 만난다. 거친 겨울 파도를 이겨 내고 독도 인근 해역에서 일주일간 조업을 마친 배 한 척이 만선으로 돌아오고, 배 위에는 팔딱거리는 ‘독도 새우’가 가득 실려 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청와대 국빈 만찬에 올라 주목받았던 이 새우는 독도 인근 수심 300~400m에서 잡혀 단단한 식감과 깊은 단맛을 지닌 울릉 바다의 진미로 소개된다.
바다의 맛을 충분히 만난 뒤에는 울릉도의 산이 키워낸 귀한 먹거리가 등장한다. 1700년 전 고구려 벽화에 그려질 만큼 오래된 토종 한우 ‘칡소’가 그 주인공이다.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에 등장하는 ‘얼룩빼기 황소’가 바로 이 칡소로, 온몸에 칡을 두른 듯 호랑이 무늬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울릉에서 나는 부지깽이와 칡, 옥수수 등으로 만든 특식 사료를 먹고 자라 깊은 육향을 품은 울릉 칡소는 섬의 산이 품은 보물로 소개되며, 바다와 산 두 자연이 함께 키워낸 겨울 울릉도의 진한 맛을 보여준다.
마지막 여정에서는 이 섬에 뿌리내린 젊은 부부의 삶이 비춰진다. 6년 전 소백산에서 만나 산을 오르며 사랑을 키운 장순철·김은경 부부는 배낭여행으로 울릉도를 찾았다가 섬의 매력에 빠져 신혼집을 마련했고, 어느덧 결혼 3년 차를 맞았다. 이들은 앞산에서 캔 전호로 전을 부쳐 먹고, 바다에서 뜯은 돌김으로 떡국을 끓이며 섬이 내어주는 만큼을 받아들이는 자급자족 신혼살이를 이어간다.
울릉도를 온몸으로 즐기는 부부는 원시림을 헤치고 깃대봉 정상에 올라 숨이 멎을 듯한 장엄한 풍경과 마주한다. 또한 울릉도에 정착한 이웃들과 함께 나리분지 천연 썰매장에서 썰매를 타고, 불멍을 하며 겨울밤을 보낸다. 9년 차 1세대 배낭여행자 유소현, 2년 차 신혼부부 주지호·정종훈 부부 등 다양한 사연을 지닌 이웃들과의 만남 속에서, 혹독한 자연을 견디며 더 단단해지는 관계와 울릉도의 일상이 드러난다.
이번 ‘겨울엔 울릉도’ 편은 바다와 절벽, 설원과 항구,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택과 일상을 따라가며 신비의 섬 울릉도의 겨울을 여러 갈래로 비춘다. ‘한국기행-겨울엔 울릉도’는 2월 9일부터 13일까지 밤 9시 35분 EBS1에서 1부부터 5부까지 연속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