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하워드 진의 <오만한 제국> 읽으면서 터무니없는 논리로 기존의 법을 방어하는 법률가들 보면서 생각한 거 떠오름.
사람들의 삶보다 법이 더 위에 있고 그건 절대적인 거라서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협함 같은 거.
예전에 하워드 진의 <오만한 제국> 읽으면서 터무니없는 논리로 기존의 법을 방어하는 법률가들 보면서 생각한 거 떠오름.
사람들의 삶보다 법이 더 위에 있고 그건 절대적인 거라서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협함 같은 거.
하루카 요코의 <도쿄대에서 우에노 치즈코에게 싸우는 법을 배우다 -한국어판 제목은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이 책 제목이 딱 저런 심리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고.
우에노 치즈코에 대한 비판은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후반부에 우에노 치즈코가 박유하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추천한 걸 비판하는 데서 한방이 더 있음.
하루카 요코의 <도쿄대에서 우에노 치즈코에게 싸우는 법을 배우다 -한국어판 제목은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이 책 제목이 딱 저런 심리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고.
우에노 치즈코에 대한 비판은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후반부에 우에노 치즈코가 박유하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추천한 걸 비판하는 데서 한방이 더 있음.
우에노 치즈코에 대한 비판은 상당히 날카로운데 망언이라고 할만한 발언 -2017년 도쿄신문에 일본인은 다문화공생을 견딜 수 없으니 이민을 받는 건 무리, 평등하게 가난해지자고 함-에 대해 비판과 우에노 치즈코 제자들의 침묵을 비판함.
우에노 치즈코에 대한 비판은 상당히 날카로운데 망언이라고 할만한 발언 -2017년 도쿄신문에 일본인은 다문화공생을 견딜 수 없으니 이민을 받는 건 무리, 평등하게 가난해지자고 함-에 대해 비판과 우에노 치즈코 제자들의 침묵을 비판함.
1990년대 한국에서도 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를 계기로 성을 둘러싼 표현의 자유 논쟁이 있었는데 일본의 그것과는 결이 다소 다르지만 21세기에 이 문제를 재검토했을 때, 정작 표현의 대상이 되는 여성의 인권이 간과되었다는 점, 페미니즘적 시각의 결여를 지적한 바 있는데 키타하라 미노리가 이러한 관점에서 20세기 일본의 서브컬처 전반을 검토하고자 하는 느낌이 있다. 이 점이 꽤 신선하고 이 책의 재미이기도.
1990년대 한국에서도 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를 계기로 성을 둘러싼 표현의 자유 논쟁이 있었는데 일본의 그것과는 결이 다소 다르지만 21세기에 이 문제를 재검토했을 때, 정작 표현의 대상이 되는 여성의 인권이 간과되었다는 점, 페미니즘적 시각의 결여를 지적한 바 있는데 키타하라 미노리가 이러한 관점에서 20세기 일본의 서브컬처 전반을 검토하고자 하는 느낌이 있다. 이 점이 꽤 신선하고 이 책의 재미이기도.
빵 + 장미 = 장미 쿠키
순전히 정원님을 위해 만들었다.
모양이 잘 나와서 기뻤고
기뻐해주셔서 기뻤다.
빵 + 장미 = 장미 쿠키
순전히 정원님을 위해 만들었다.
모양이 잘 나와서 기뻤고
기뻐해주셔서 기뻤다.
"사람들이 아픈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는 어쩌면 다음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마음을 써줄 가치가 있을 만큼 심각하게 아프되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며 평정심을 유지하고 병을 농담거리로 삼을 만큼 여유 있는 자세를 취하면서 한탄과 한숨은 안으로만 삼키고 안 들리게 울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러나 고무적인 이야기와 깨달음은 내게 다오."
"사람들이 아픈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는 어쩌면 다음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마음을 써줄 가치가 있을 만큼 심각하게 아프되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며 평정심을 유지하고 병을 농담거리로 삼을 만큼 여유 있는 자세를 취하면서 한탄과 한숨은 안으로만 삼키고 안 들리게 울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러나 고무적인 이야기와 깨달음은 내게 다오."
21세기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 읽은 글 중 이 글이 제일 울림이 컸다.
특히 ’선택‘ 대신 ’출산정의‘를 주장한 구절이 인상 깊었다.
“”여성이 대체 어떻게 선택할 수 있는가?“ 강제 불임화 시술 같은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경우라도, 여성들은 출산을 결정할 때 너무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선택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21세기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 읽은 글 중 이 글이 제일 울림이 컸다.
특히 ’선택‘ 대신 ’출산정의‘를 주장한 구절이 인상 깊었다.
“”여성이 대체 어떻게 선택할 수 있는가?“ 강제 불임화 시술 같은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경우라도, 여성들은 출산을 결정할 때 너무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선택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대안적 삶이 직장 없이 소소한 소비를 하는 것만은 아닐 테고.
이 시스템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삶이 그것밖에 안 되는 건 아니겠지만 sns라는 미디어로 보이는 것의 한계일지도.
요즘 생각하는 것: 동네 공동체. 근데 나는 인간을 너무 무서워함.
대안적 삶이 직장 없이 소소한 소비를 하는 것만은 아닐 테고.
이 시스템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삶이 그것밖에 안 되는 건 아니겠지만 sns라는 미디어로 보이는 것의 한계일지도.
요즘 생각하는 것: 동네 공동체. 근데 나는 인간을 너무 무서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