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죽어도 (형용어로써가 아니라, 리터럴리) 싫은지 지금 반문은 해 둬야 한다. 정말, “죽어도” 그게 싫은 거 맞나? 정말 죽을 정도로 싫나?
그 정도는 아닐 수 있다. 그거보다는 죽는게 더 싫을 수 있다. 어느쪽이냐면 보통 내가 죽는게 더 싫은 게 당연하다면 당연할 거다. 그건 토털리 노멀이고 탓할 수는 없다.
그게 죽어도 (형용어로써가 아니라, 리터럴리) 싫은지 지금 반문은 해 둬야 한다. 정말, “죽어도” 그게 싫은 거 맞나? 정말 죽을 정도로 싫나?
그 정도는 아닐 수 있다. 그거보다는 죽는게 더 싫을 수 있다. 어느쪽이냐면 보통 내가 죽는게 더 싫은 게 당연하다면 당연할 거다. 그건 토털리 노멀이고 탓할 수는 없다.
파괴는 훨씬 두리뭉실하고 형체 없는 관념의 영역에서만 극적으로 일어나고, 현실에 스며나오는 그 여파는 십중팔구 어떻게든 땜질해서 헤쳐나갈 만 할 것이다. 개인 보존의 측면에서 그런 실존적 위협은 오지 않는다. 길게 잡아 남은 여생의 스코프로 확장해도 다분히 그렇다. 그냥 모르는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서 좀 더 편하게 못된 짓을 하는 정도다.
파괴는 훨씬 두리뭉실하고 형체 없는 관념의 영역에서만 극적으로 일어나고, 현실에 스며나오는 그 여파는 십중팔구 어떻게든 땜질해서 헤쳐나갈 만 할 것이다. 개인 보존의 측면에서 그런 실존적 위협은 오지 않는다. 길게 잡아 남은 여생의 스코프로 확장해도 다분히 그렇다. 그냥 모르는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서 좀 더 편하게 못된 짓을 하는 정도다.
세상이 모두 암흑에 뒤덮일 듯이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제법 추상적 영역의 메타포일 뿐이고, 그 다음날 세수하고 출근하고 밥먹고 퇴근해서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은 거의 무기한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갑자기 멸망하는 현실이 하루아침에 오는 그런 일은 없다. 그건 내가 내적으로 그렇게 여기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세상이 모두 암흑에 뒤덮일 듯이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제법 추상적 영역의 메타포일 뿐이고, 그 다음날 세수하고 출근하고 밥먹고 퇴근해서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은 거의 무기한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갑자기 멸망하는 현실이 하루아침에 오는 그런 일은 없다. 그건 내가 내적으로 그렇게 여기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사실이라 더...
사실이라 더...
"유는 개인적 사유로 1930년에 퇴사했고, 스미스는 1937년에 벼락을 맞아 죽었다. 어쨌거나 회사는 번창했다."
아니 공동 창업자가 벼락을 맞아 죽었는데 그 바로 다음 문장이 "어쨌거나 회사는 번창했다"라니
en.m.wikipedia.org/wiki/La_Choy
"유는 개인적 사유로 1930년에 퇴사했고, 스미스는 1937년에 벼락을 맞아 죽었다. 어쨌거나 회사는 번창했다."
아니 공동 창업자가 벼락을 맞아 죽었는데 그 바로 다음 문장이 "어쨌거나 회사는 번창했다"라니
en.m.wikipedia.org/wiki/La_Choy
문재인은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180석을 먹었는데 이재명은 당연히 더 잘해야 한다는 당황스러운 의견도 보이는데 코로나는 당시 민주당 선거에 호재였지 악재가 아니었습니다. 외신이 정말 하도 극찬을 해서 언론이 최대한 막는 데도 한계가 있었고요. (계속)
문재인은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180석을 먹었는데 이재명은 당연히 더 잘해야 한다는 당황스러운 의견도 보이는데 코로나는 당시 민주당 선거에 호재였지 악재가 아니었습니다. 외신이 정말 하도 극찬을 해서 언론이 최대한 막는 데도 한계가 있었고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