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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gnusgreen.bsky.social
@cygnusgreen.bsky.social
GQX 녹색양반 중심으로 떠드는 계정 /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 🟥🟩 상대고정 / 기력 없음 기반지식 없음 아무 말 대잔치 !!결말까지 스포주의!!
플필사진 출처:
https://science.nasa.gov/missions/hubble/cygnus-loop-supernova-remnant/
https://chandra.harvard.edu/photo/2011/cygx1/more.html
이것저것 다 지나간 다음에는 또 후끈후끈한 음료 마시면서 나누는 한담으로 끝나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줌 시티에 탐정사무소가 있던가? 허가제인데, 기억하기로는 아니오. 몇 년 전에 문을 닫았습니다. 좋은 일이네. 네 눈가가 심심찮게 거뭇해지던 보람이 있겠어. 뿌듯했지요.
December 16, 2025 at 8:15 PM
그러면 재미있을 것 같다?
흥미롭겠지?
쿵쿵. 무게나 힘을 실어 정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막 질문에 대꾸하기 위해 입을 열던 중령의 시선이 고스란히 일행의 얼굴에 꽂힌다.
개인적으로 초대하신 사람이 있습니까?
너는?
방해받지 않을 계획이었습니다만.
둘은 잠시 서로를 빤히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단말기를 집어들어 현관을 비추는 카메라와 우회시킨 인터폰 화면을 띄운 것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다.
...물 더 끓여둘게.
...예.
December 16, 2025 at 8:15 PM
충분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다. 아무튼 그는 지난 전쟁 초반을 중령과는 달리 피부에 와닿는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다. 게다가 둘이 지구의 외딴 숙박처에서 서로와만 시간을 보내고 있게 된 것도 사적인 우여곡절의 정산 결과만은 아니다. 소파에 내려놓인 단말기 안에서는 폰 브라운에서 뻗어나온 가지들에 대한 자료를 삼키며 탐색 프로그램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해버리고 한가로운 흐름에 따라 다시 입을 연다. 꼭 범죄가 아니어도, 말야. 고전 매체에서는 흔히 이런 날에 손님이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돼.
December 16, 2025 at 8:15 PM
짓지 않던 표정을 한 채로 몸을 기울이고 있다. 도망가지 마.
그러니까, 당신께 불공평하다고 했잖아요. 중령은 생각한다. 생각했기 때문에 마주친 눈동자를 향해 말한다. 도망치게 하지 마세요.
깜빡, 파란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반짝인다. 약속이야? 네. 아침에? 술이 깨면요.
그 대답에 캬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술기운 때문에 제대로 보이거나 판단되지 않았으므로, 꼭 잡힌 손끝을 마주잡으면서도 중령은 그래도 몸이란 때때로 귀찮다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December 15, 2025 at 11:11 PM
있다. 그 시절에 대위는 그가 그런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사랑했었다. 지금 중령이 그렇듯이. 불공평해요. 중령은 중얼거린다.
뭐가 불공평해?
저는 취해 있으니까요. 당신보다 더.
키득키득 웃음이 떨어진다.
즐거워 보이시네요.
응.
몸이 있다는 건...... 좋아요.
응.
다리 안 아파요?
눈높이가 비슷한 위치로 내려온다. 손이 배 위에 얹혀서 중령은 비로소 손이 여전히 이어져 있다는 것과 캬가 여전히 손끝만을 손끝으로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군인이 아닌 사람의 손가락을 가진 남자는 군인이었던 시절에
December 15, 2025 at 11:11 PM
놓이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너편에 반쯤 엎드려 있던 남자가 비칠거리면서도 몸을 일으킨다. 손끝을 놓지 않아서 휘청거림을 힘의 강약으로도 느낄 수 있다. 일어서서 남자는 자신이 내려놓았던 잔을 지나고, 어느 쪽인가가 마지막에 내려놓았던 병을 지나고, 중령이 비워서 내려놓았던 잔을 지난다. 지나서 중령을 내려다본다. 몸의 윤곽을 따라 떨어지는 그림자 속에서 캬가 말한다. 나는 내 얘기가 아니라 네 얘기를 한 거야.
목소리는 부드럽다. 아는 목소리다. 그가 아직 붉은 혜성이고 중령이 아직 대위였던 무렵에, 몇 번이고 들은 적이
December 15, 2025 at 11:11 PM
마주 내민 손이 채 닿기 전에 캬의 손끝이 먼저 그 손가락 두엇을 낚아챈다. 손가락 끝으로 손가락 끝을 잡고서 흔들어보인다.
이런 얘기야.
그런가요?
마주친 시선에 의하면 그런 모양이다. 가만히 눈 속을 들여다보던 캬가 웃는다. 함께 전투를 앞뒀던 때처럼, 분노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불가항력에 천체의 속도로 부딪치는 사람처럼, 겁에 질릴 일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처럼.
도망가지 마.
도망 안 가요.
왜냐하면, 캬가 보여준 이야기가 아주 좋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만큼 마음이
December 15, 2025 at 11:11 PM
부루퉁하게 팔걸이에 상체를 기댄다.
그러니까, 그렇다는 거야.
......무슨 이야기였죠?
변명하자면, 중령은 찌푸려졌던 눈가에 물기가 있었는지 따위를 고민하고 있었다. 취한 시야와 취한 판단력으로 무엇을 보았는지 생각하는 일에 사고를 기울이다 보니 그 전까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는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잘게 까칠한 시선이 돌아온다. 이건 본 기억이 있다. 여전히 잘게 까칠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여전히 팔걸이에 몸을 기댄 채로 캬가 한쪽 손을 뻗는다. 다소 멀지만 닿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December 15, 2025 at 11:11 PM
고집스럽다. 통증 때문에 술기운이 달아나고 말았는지 또렷하기까지 하다. 아직 안 끝났어.
듣는 건 내내 할 수 있잖습니까.
안 끝났다니까.
그래서 중령은 그냥 그대로 있는다. 얼마간 지난 후에 푹 한숨을 내쉰 캬가 옆에 놓아두었던 술잔을 들어올린다. 입을 감싸쥔 손을 따라 숙여졌던 얼굴이 보인다.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술기운 때문에. 갑작스런 통증 때문에. 어쩌면 민망함 때문에. 찌푸려진 눈가가 소독이라도 하는 것처럼 잔을 기울이는 움직임에 가려졌다가 고랑이 더 깊어진 채로 다시 시야에 돌아온다. 잔을 자리에 돌려놓은 남자가
December 15, 2025 at 11:11 PM
중령은 그래도 그의 목소리란 듣기 좋다는 생각을 하다가, 캬가 아무렇게나 취해 횡설수설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물안개 같은 기쁨에 젖다가. 문장이 유독 불명확한 소리와 함께 뚝 끊기는 바람에 눈을 깜빡인다. 몇 초 후에 길게 신음소리가 들린다.
씹었어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서 중령은 내내 천장 쪽을 향해 있던 고개를 돌린다. 배에 올려뒀던 손을 풀고 몸을 일으키기 전에, 연신 신음인지 뭉개진 투덜거림인지 모를 소리를 흘리던 남자가 또 손을 내젓는다. 모양새가 조금 날카로운 걸 보니 아프게 씹은 모양인데. 그러나 목소리는
December 15, 2025 at 11:11 PM
아니었다. 알콜 기운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머리라서 사고가 휘청거리고는 있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는 것만은 알고 있다. 그래서 중령은 순순히 묻는다.
그래야 이럴 수 있으니까. 이럴, 하고 말하면서 군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굳은살 박인 손이 휘적휘적 허공을 젓는다. 중령과 캬와 둘 사이에 놓인 물건들을 그렇게 하면 보이지 않는 천으로 감싸 보일 수 있는 것처럼.
알콜이 몸에 작용하기는 하죠.
응. 음과 응 사이의 불분명한 소리로 캬가 대답한다. 맛과 향은 물질적이고, 말은 물리적 파동이고. 올이 풀린 발음으로 이어지는 문장을 들으면서
December 15, 2025 at 11:11 PM
시간이 보이는 건 어떤 느낌이었냐고 중령이 물었으면 좋겠다. 3인칭으로 꾸는 꿈 같았다고 대답할까. 내용은 좋지 않았지만 감각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대령은 몸이랄까 존재 자체에 묶인 게 너무 많았으니까 해방감도 조금은 있었을지도? 세계의 비밀을 인지하는 순간에 엄청난 속도로 바닥에 처박힐 해방감이었겠지만.
그래도 나는 몸이 있는 게 좋아.
그렇습니까.
취기로 게슴츠레해진 시선이 흘긋 중령을 향했으면 좋겠다. 얄미운 점이 있는지 시선이 잘게 까칠하다.
안 물어볼 건가?
왜 좋으십니까?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서 묻지 않은 것은
December 15, 2025 at 11:11 PM
그건 그렇고, 엔딩 뒤에 캬랑 중령이랑 만나서 사적으로 심각한 이야기 하게 됐는데 얘기를 하려고 자리를 잡은 건지 술을 마시려고 자리를 잡은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진탕 취해서 계속 혀 꼬이고 생각 꼬이는 바람에 결국 한숨 푹 내쉬면서 몸이란 거 귀찮네요 말해버리는 중령은 보고 싶어. 몸이 없었던 적이라도 있냐고 야유인지 농담인지 모를 투로 말하는 캬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있지만 불콰한 낯이고. 유령 아닙니까. 웃지도 않고 중령이 한가롭게 대답하는 거야. 둘 다 연신 히끅거리면서, 태평하게 소파에 눕듯이 등을 기대고서.
December 15, 2025 at 8:26 PM
가치관 변화 이후로 본인의 생사 측면에 건조한 혹은 담백한 사람이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을 거라고도 생각해. 산 사람들의 세계에서 소통하고 움직이려면 살아 있는 몸이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을 만큼 그걸 잘 알게 되는 5년을 보냈을 것이다. 지온 줌 다이쿤이 이름으로만 남았듯이 대령이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세월을.
December 15, 2025 at 8:14 PM
성가신 건 한계나 어려움에 맞닥트리게 만든 요인이지 몸이, 살아 있음이 아닌 거지....
December 15, 2025 at 8:09 PM
오프닝에서 달리고 있던 모습이 정말 잘 어울려. 열심히 했다. 당신은. 앞으로도 그렇겠지.
그러니 이 사람이 대령에게, 온 목숨을 걸고 부딪쳐 개인으로 만든 사람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야만 하는 질문을 던진 걸, 나는 언제나 사랑이라고 부를 거야.
December 14, 2025 at 9:00 PM
아니 나 대령을 유령으로 만들어버렸넼ㅋㅋㅋ 붉은 유령→붉은 혜성…….
December 14, 2025 at 6:59 PM
아무튼, 그래서 이 양반이 그 단어를 어떤 식으로 쓰는지가 보일 때가 좋아. 작중에서 결국 대령과의 관계에 대해 중령 스스로는 아무 이름도 붙여 부르지 않은 것도.
December 14, 2025 at 3:54 PM
그만큼 사람의 사고와 감정과 기억이라는 게 얼마나 언어화된 것에 거꾸로 영향을 받아 왜곡되는지도 잘 알고 있으니까 거짓말을 하느니 교묘하게 여백이며 어긋남을 끼워넣어서라도 입을 다물어버리는 거라고도 생각하지만.
December 12, 2025 at 6:59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