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필사진 출처:
https://science.nasa.gov/missions/hubble/cygnus-loop-supernova-remnant/
https://chandra.harvard.edu/photo/2011/cygx1/more.html
흥미롭겠지?
쿵쿵. 무게나 힘을 실어 정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막 질문에 대꾸하기 위해 입을 열던 중령의 시선이 고스란히 일행의 얼굴에 꽂힌다.
개인적으로 초대하신 사람이 있습니까?
너는?
방해받지 않을 계획이었습니다만.
둘은 잠시 서로를 빤히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단말기를 집어들어 현관을 비추는 카메라와 우회시킨 인터폰 화면을 띄운 것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다.
...물 더 끓여둘게.
...예.
흥미롭겠지?
쿵쿵. 무게나 힘을 실어 정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막 질문에 대꾸하기 위해 입을 열던 중령의 시선이 고스란히 일행의 얼굴에 꽂힌다.
개인적으로 초대하신 사람이 있습니까?
너는?
방해받지 않을 계획이었습니다만.
둘은 잠시 서로를 빤히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단말기를 집어들어 현관을 비추는 카메라와 우회시킨 인터폰 화면을 띄운 것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다.
...물 더 끓여둘게.
...예.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해버리고 한가로운 흐름에 따라 다시 입을 연다. 꼭 범죄가 아니어도, 말야. 고전 매체에서는 흔히 이런 날에 손님이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돼.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해버리고 한가로운 흐름에 따라 다시 입을 연다. 꼭 범죄가 아니어도, 말야. 고전 매체에서는 흔히 이런 날에 손님이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돼.
그러니까, 당신께 불공평하다고 했잖아요. 중령은 생각한다. 생각했기 때문에 마주친 눈동자를 향해 말한다. 도망치게 하지 마세요.
깜빡, 파란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반짝인다. 약속이야? 네. 아침에? 술이 깨면요.
그 대답에 캬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술기운 때문에 제대로 보이거나 판단되지 않았으므로, 꼭 잡힌 손끝을 마주잡으면서도 중령은 그래도 몸이란 때때로 귀찮다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당신께 불공평하다고 했잖아요. 중령은 생각한다. 생각했기 때문에 마주친 눈동자를 향해 말한다. 도망치게 하지 마세요.
깜빡, 파란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반짝인다. 약속이야? 네. 아침에? 술이 깨면요.
그 대답에 캬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술기운 때문에 제대로 보이거나 판단되지 않았으므로, 꼭 잡힌 손끝을 마주잡으면서도 중령은 그래도 몸이란 때때로 귀찮다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뭐가 불공평해?
저는 취해 있으니까요. 당신보다 더.
키득키득 웃음이 떨어진다.
즐거워 보이시네요.
응.
몸이 있다는 건...... 좋아요.
응.
다리 안 아파요?
눈높이가 비슷한 위치로 내려온다. 손이 배 위에 얹혀서 중령은 비로소 손이 여전히 이어져 있다는 것과 캬가 여전히 손끝만을 손끝으로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군인이 아닌 사람의 손가락을 가진 남자는 군인이었던 시절에
뭐가 불공평해?
저는 취해 있으니까요. 당신보다 더.
키득키득 웃음이 떨어진다.
즐거워 보이시네요.
응.
몸이 있다는 건...... 좋아요.
응.
다리 안 아파요?
눈높이가 비슷한 위치로 내려온다. 손이 배 위에 얹혀서 중령은 비로소 손이 여전히 이어져 있다는 것과 캬가 여전히 손끝만을 손끝으로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군인이 아닌 사람의 손가락을 가진 남자는 군인이었던 시절에
그러나 건너편에 반쯤 엎드려 있던 남자가 비칠거리면서도 몸을 일으킨다. 손끝을 놓지 않아서 휘청거림을 힘의 강약으로도 느낄 수 있다. 일어서서 남자는 자신이 내려놓았던 잔을 지나고, 어느 쪽인가가 마지막에 내려놓았던 병을 지나고, 중령이 비워서 내려놓았던 잔을 지난다. 지나서 중령을 내려다본다. 몸의 윤곽을 따라 떨어지는 그림자 속에서 캬가 말한다. 나는 내 얘기가 아니라 네 얘기를 한 거야.
목소리는 부드럽다. 아는 목소리다. 그가 아직 붉은 혜성이고 중령이 아직 대위였던 무렵에, 몇 번이고 들은 적이
그러나 건너편에 반쯤 엎드려 있던 남자가 비칠거리면서도 몸을 일으킨다. 손끝을 놓지 않아서 휘청거림을 힘의 강약으로도 느낄 수 있다. 일어서서 남자는 자신이 내려놓았던 잔을 지나고, 어느 쪽인가가 마지막에 내려놓았던 병을 지나고, 중령이 비워서 내려놓았던 잔을 지난다. 지나서 중령을 내려다본다. 몸의 윤곽을 따라 떨어지는 그림자 속에서 캬가 말한다. 나는 내 얘기가 아니라 네 얘기를 한 거야.
목소리는 부드럽다. 아는 목소리다. 그가 아직 붉은 혜성이고 중령이 아직 대위였던 무렵에, 몇 번이고 들은 적이
이런 얘기야.
그런가요?
마주친 시선에 의하면 그런 모양이다. 가만히 눈 속을 들여다보던 캬가 웃는다. 함께 전투를 앞뒀던 때처럼, 분노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불가항력에 천체의 속도로 부딪치는 사람처럼, 겁에 질릴 일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처럼.
도망가지 마.
도망 안 가요.
왜냐하면, 캬가 보여준 이야기가 아주 좋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이런 얘기야.
그런가요?
마주친 시선에 의하면 그런 모양이다. 가만히 눈 속을 들여다보던 캬가 웃는다. 함께 전투를 앞뒀던 때처럼, 분노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불가항력에 천체의 속도로 부딪치는 사람처럼, 겁에 질릴 일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처럼.
도망가지 마.
도망 안 가요.
왜냐하면, 캬가 보여준 이야기가 아주 좋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만큼 마음이
그러니까, 그렇다는 거야.
......무슨 이야기였죠?
변명하자면, 중령은 찌푸려졌던 눈가에 물기가 있었는지 따위를 고민하고 있었다. 취한 시야와 취한 판단력으로 무엇을 보았는지 생각하는 일에 사고를 기울이다 보니 그 전까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는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잘게 까칠한 시선이 돌아온다. 이건 본 기억이 있다. 여전히 잘게 까칠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여전히 팔걸이에 몸을 기댄 채로 캬가 한쪽 손을 뻗는다. 다소 멀지만 닿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까, 그렇다는 거야.
......무슨 이야기였죠?
변명하자면, 중령은 찌푸려졌던 눈가에 물기가 있었는지 따위를 고민하고 있었다. 취한 시야와 취한 판단력으로 무엇을 보았는지 생각하는 일에 사고를 기울이다 보니 그 전까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는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잘게 까칠한 시선이 돌아온다. 이건 본 기억이 있다. 여전히 잘게 까칠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여전히 팔걸이에 몸을 기댄 채로 캬가 한쪽 손을 뻗는다. 다소 멀지만 닿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듣는 건 내내 할 수 있잖습니까.
안 끝났다니까.
그래서 중령은 그냥 그대로 있는다. 얼마간 지난 후에 푹 한숨을 내쉰 캬가 옆에 놓아두었던 술잔을 들어올린다. 입을 감싸쥔 손을 따라 숙여졌던 얼굴이 보인다.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술기운 때문에. 갑작스런 통증 때문에. 어쩌면 민망함 때문에. 찌푸려진 눈가가 소독이라도 하는 것처럼 잔을 기울이는 움직임에 가려졌다가 고랑이 더 깊어진 채로 다시 시야에 돌아온다. 잔을 자리에 돌려놓은 남자가
듣는 건 내내 할 수 있잖습니까.
안 끝났다니까.
그래서 중령은 그냥 그대로 있는다. 얼마간 지난 후에 푹 한숨을 내쉰 캬가 옆에 놓아두었던 술잔을 들어올린다. 입을 감싸쥔 손을 따라 숙여졌던 얼굴이 보인다.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술기운 때문에. 갑작스런 통증 때문에. 어쩌면 민망함 때문에. 찌푸려진 눈가가 소독이라도 하는 것처럼 잔을 기울이는 움직임에 가려졌다가 고랑이 더 깊어진 채로 다시 시야에 돌아온다. 잔을 자리에 돌려놓은 남자가
씹었어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서 중령은 내내 천장 쪽을 향해 있던 고개를 돌린다. 배에 올려뒀던 손을 풀고 몸을 일으키기 전에, 연신 신음인지 뭉개진 투덜거림인지 모를 소리를 흘리던 남자가 또 손을 내젓는다. 모양새가 조금 날카로운 걸 보니 아프게 씹은 모양인데. 그러나 목소리는
씹었어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서 중령은 내내 천장 쪽을 향해 있던 고개를 돌린다. 배에 올려뒀던 손을 풀고 몸을 일으키기 전에, 연신 신음인지 뭉개진 투덜거림인지 모를 소리를 흘리던 남자가 또 손을 내젓는다. 모양새가 조금 날카로운 걸 보니 아프게 씹은 모양인데. 그러나 목소리는
그래야 이럴 수 있으니까. 이럴, 하고 말하면서 군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굳은살 박인 손이 휘적휘적 허공을 젓는다. 중령과 캬와 둘 사이에 놓인 물건들을 그렇게 하면 보이지 않는 천으로 감싸 보일 수 있는 것처럼.
알콜이 몸에 작용하기는 하죠.
응. 음과 응 사이의 불분명한 소리로 캬가 대답한다. 맛과 향은 물질적이고, 말은 물리적 파동이고. 올이 풀린 발음으로 이어지는 문장을 들으면서
그래야 이럴 수 있으니까. 이럴, 하고 말하면서 군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굳은살 박인 손이 휘적휘적 허공을 젓는다. 중령과 캬와 둘 사이에 놓인 물건들을 그렇게 하면 보이지 않는 천으로 감싸 보일 수 있는 것처럼.
알콜이 몸에 작용하기는 하죠.
응. 음과 응 사이의 불분명한 소리로 캬가 대답한다. 맛과 향은 물질적이고, 말은 물리적 파동이고. 올이 풀린 발음으로 이어지는 문장을 들으면서
그래도 나는 몸이 있는 게 좋아.
그렇습니까.
취기로 게슴츠레해진 시선이 흘긋 중령을 향했으면 좋겠다. 얄미운 점이 있는지 시선이 잘게 까칠하다.
안 물어볼 건가?
왜 좋으십니까?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서 묻지 않은 것은
그래도 나는 몸이 있는 게 좋아.
그렇습니까.
취기로 게슴츠레해진 시선이 흘긋 중령을 향했으면 좋겠다. 얄미운 점이 있는지 시선이 잘게 까칠하다.
안 물어볼 건가?
왜 좋으십니까?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서 묻지 않은 것은
그러니 이 사람이 대령에게, 온 목숨을 걸고 부딪쳐 개인으로 만든 사람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야만 하는 질문을 던진 걸, 나는 언제나 사랑이라고 부를 거야.
그러니 이 사람이 대령에게, 온 목숨을 걸고 부딪쳐 개인으로 만든 사람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야만 하는 질문을 던진 걸, 나는 언제나 사랑이라고 부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