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저걸 청산하고 제거한다 한들 최종적으로 핍박이 제거된다는 기대가 없다면 대체 그걸 우선순위에 올려놓아야 할 이유를 어떻게 동감하고, 내면화해서 행동하란 말입니까?
당장 저걸 청산하고 제거한다 한들 최종적으로 핍박이 제거된다는 기대가 없다면 대체 그걸 우선순위에 올려놓아야 할 이유를 어떻게 동감하고, 내면화해서 행동하란 말입니까?
이상적 명분도 공유되고 있지 않습니다 : 하지만 불편함 속에서 이로움을 찾읍시다.
즉각적인 해법은 없을 것입니다 : 하지만 당장의 넘어섬은 함께해 봅시다.
이상적 명분도 공유되고 있지 않습니다 : 하지만 불편함 속에서 이로움을 찾읍시다.
즉각적인 해법은 없을 것입니다 : 하지만 당장의 넘어섬은 함께해 봅시다.
그럼에도 지난주 하나의 결과를 다 같이 받아든 것은 어떤 고상한 공통의 명분이기보다는, 오월동주와 같은 실용주의적 동맹을 추구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그러한 접근이 딱히 대의명분의 추구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았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지난주 하나의 결과를 다 같이 받아든 것은 어떤 고상한 공통의 명분이기보다는, 오월동주와 같은 실용주의적 동맹을 추구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그러한 접근이 딱히 대의명분의 추구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았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계엄 폭거 대통령‘ 을 낳은 정당에 대해, 적어도 쪽팔려서 지지한다는 말을 접어버리는 정도의 기초적 가치판단력이 분명 반대편에 있었다. 그리고 그걸 deliberately 찢어버렸다.
국민의 3할이 여전히 그렇게 사고의 하한선을 당파성으로 교체했다. 앞으로 한국 유권자 지형에서 쉽게 바뀌지 않을 팩터로 남을 것이다. 이게 병리적이지 않다고 말하려면 꽤 대단한 비약을 해야 한다.
‘계엄 폭거 대통령‘ 을 낳은 정당에 대해, 적어도 쪽팔려서 지지한다는 말을 접어버리는 정도의 기초적 가치판단력이 분명 반대편에 있었다. 그리고 그걸 deliberately 찢어버렸다.
국민의 3할이 여전히 그렇게 사고의 하한선을 당파성으로 교체했다. 앞으로 한국 유권자 지형에서 쉽게 바뀌지 않을 팩터로 남을 것이다. 이게 병리적이지 않다고 말하려면 꽤 대단한 비약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