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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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았기에 그냥 살고 있음/그레이 로맨틱 그레이 에이섹슈얼/약자 소수자 혐오 반대/페미니스트/녹색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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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성정체성, 성적지향, 로맨틱 지향, 피부색, 인종, 국적, 민족, 연령, 장애, 학력, 학벌, 출생지, 거주지, 소득, 직업, 가족형태, 질병유무에 따른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을 원합니다.
한국식 자칭 극우는 그러니까 그냥 노예 근성에 찌든 백인 사대주의자다. 진짜 극우는 자기 민족이 자기 나라를 점유해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의 자칭 극우는 한국이 약소국, 빈민국으로 남아 미국의 원조를 받으며 기생하기를 원한다. 한국 극우는 매국노다.
n.news.naver.com/mnews/articl...
[정보라의 세상 속으로]차별금지법과 극우
| 정보라 소설가 22대 국회에서 두 번째로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었다. 차별금지법이 한시라도 빨리 제정되기를 기원한다. 최근에 차별금지법과 극우에 대한 발표를 하게 되어 극우와 파시즘에 대해 억지로 공부를 했다. 그
n.news.naver.com
February 10, 2026 at 3:42 PM
정치권에 묻고 싶다. 노동자들이 요구를 낮추고 양보만 하다가 몇 년을 더 거리에서 보내라는 것인가? 복직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m.ohmynews.com/NWS_Web/Mobi...
세종호텔 문제 악화일로... 정치권에 묻는다
세종호텔 해고자들이 로비 점거 19일 만에 경찰에 연행됐다. 노조는 고공농성 해제 후 순차 복직 등 여러 번 양보했으나 사측은 위로금 합의만 고집했다. 이재명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 고진수 지부장 구속을 시도했으나 석방 탄원 9천 개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정치권은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m.ohmynews.com
February 10, 2026 at 3:24 PM
심야·새벽 배송은 워킹맘 등 소비자 집단의 편의를 위한 필수 인프라인데, 물류 혁신을 ‘규제’라는 이름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야 노동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워킹맘을 소환한 셈이다. 하지만 이들은 아이의 준비물과 생필품을 챙기는 것이 왜 늦게 퇴근한 엄마의 몫이어야 하는지, 노동자들이 새벽 배송이 필요할 정도로 왜 이렇게 오래 일해야 하는지 질문하지 않는다.
www.hani.co.kr/arti/opinion...
“쿠팡 없이 어떻게 애를 키웠냐”고 묻는 딸에게 [기고]
(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임윤옥 | 성평등노동연구소 소소 공동소장 딸 결혼 소식을 알리자 “애도 봐줄 거야?”라고 물어보는 지인들이 많았다. “제 새끼는 자기가 키워야지” 큰소리쳤는데
www.hani.co.kr
February 10, 2026 at 3:11 PM
오키나와전쟁 당시의 식민지주의 위계질서가 형태를 바꿔 수용소 안에서 반복되었음을 의미한다.
-오세종『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중에서
February 10, 2026 at 2:05 PM
이유야 어떻든 수용소 안에서도 피해와 가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녀들은 미군의 '위안부'로도 동원되었다. 미군은 그녀들을 바로 귀국시키지 않고 간호사로 투입하거나 미군 전용 바bar로 유인했다. 일본계 2세가 관리하는 매춘업소로 흘러들어간 조선인 여성도 있었다. 그녀들은 전시에는 주로 일본군에게, 그리고 오키나와 전쟁 이후에는 미군에게, 그리고 오키나와 남성, 조선인 남성도 합세한 성폭력의 피해를 계속해서 입었던 것이다.
February 10, 2026 at 2:05 PM
수용소 안 조선인 여성들은 전쟁은 끝났지만 가혹한 상황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조선인 남성이 옛 '위안부'를 미군 병사들에게 알선했기 때문이다. 또 자마미섬 대장 우메자와 유타카의 '애인'이던 조선인 '도미요'도 야카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었는데, '후쿠다福田'라고 하는 조선 출신 '군부'가 그녀를 흑인 병사에게 넘겨 '노리개'로 삼게 하였다." 그녀가 우메자와에게 미군이 상륙하면 조선인 '군부'는 "방해"가 될 뿐이니 살해해야 한다고 말한 데에 원한을 품었기 때문이다.
February 10, 2026 at 2:05 PM
그러나 그것으로 그의 가해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식민지주의 질서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식민지지배, 식민지주의, 오키나와 차별, 민족차별, 남녀 차별이 모두 합쳐진 것이 오키나와의 '위안소'이며, 조선인 '위안부'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식민지주의 위계질서는 민족과 인종을 선명하게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복잡하게 뒤엉켜있으면서 좀 더 하위에 자리하는 이들을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시스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세종『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중에서
February 10, 2026 at 1:54 PM
김 씨는 외출허가가 있는 날은 '군부'에게도 '돌격일번'이라고 하는 콘돔이 지급되었다는 것도 기술하고 있다. '군부'도 위안소 출입이 허가되었음을 의미한다. 일본의 식민지지배가 근본문제겠지만, 조선인 남성도 성차별, 성폭력에 가담하고, 가해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김원영은 콘돔을 "풍선을 불어 날려버렸다"고 한다.
February 10, 2026 at 1:54 PM
마지막으로 '위안부'가 '군부'보다 더 가혹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조선인 '군부'도 '위안소를 드나들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군부'였던 김원영은 오키나와 본섬 북부 나고에서 조선인 '위안부'인 '사다코貞子'와 만나게 된다. 김 씨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중 그녀의 신상에 대해 알게 되고 호감을 느껴 자신의 '여동생'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February 10, 2026 at 1:54 PM
주민과 군이 혼재하는 가운데 '위안소'와 오키나와 사람들을 격리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고, 또 그만큼 전시 '위안부'와 '위안'의 존재가 일상화되어 있음을 예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세종『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중에서
February 10, 2026 at 1:44 PM
또한 야에야마 제도에도 '위안소가 설치되었고, 이시가키섬 가비라川平에는 '바바 하루ババハル'라고 불리는 여성이 '위안부'로 가비라의 '위안소'에 머물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위안부'와 '위안소'가 여러 사람들에게 목격되었던 것에는 몇몇 이유가 자리한다. 요컨대, 일반 주민들의 가옥을 접수했던 것, 지역 공공장소 가까이에 '위안소'를 설치했던 것, 호안에 병사, '위안부', 주민들이 함께 머물렀던 것 등이 그것이다.
February 10, 2026 at 1:44 PM
그래서 삐야ピーヤー라고 하는 이름의 본토에서 보내어진 조선인 위안부들을 군이 민가를 빌려서 히라라平良, 아카비라赤平 등지에 살게 했어요"라는 식의 증언들이 이어진다. 언어학자 나카소네 세이젠仲宗根政善 역시 미군 상륙 이전에 우라소에 다쿠시沢岻에 설치된 큰 '위안소'를 목격했다고 한다.
이도 주민들도 '위안소'와 '위안부'를 목격했다. 미야코섬에 거주하던 요나하 도시히로与那職敏博는 소년 시절 '위안부'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February 10, 2026 at 1:44 PM
"[시카와시具志川에 있는] 다카에스高江洲 치과와 그 앞에 자리한 관공서 중간쯤에 위안소가 있었어요. 조선인 여자들이 많이들 위문을 위해 와있었죠(···후략···)", "지금의 라이카무(ライカム, 쇼핑몰 이름-인용자) 입구 오른편쯤에 우후시ウフシー(큰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로 앞에 가야부키(억새로 이은 지붕-인용자) 가옥이 만들어졌고, 거기에 조선인 여자들이 있었어요(···후략···)", "슈리에는 군대가 엄청 많았어요.
February 10, 2026 at 1:44 PM
오키나와 본섬에서는 슈리首里와 나하那覇만이 아니라, 나고名護, 이토만糸満, 요미탄読谷, 기노완宜野湾, 우라소에浦添, 하에바루南風原, 모토부초本部町, 다마구스쿠玉城 마을 등 여기저기에서 '위안부'와 '위안소가 목격되었다.
February 10, 2026 at 1:44 PM
일본군 부대는 '위안부', '위안소'를 주민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주의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위안소'를 주민들로부터 격리하여 '방첩防諜'을 꾀하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멀었나, 아직 멀었나"라며 '위안'에 줄지어 서있는 병사들을 흉내 내는 아이들도 있었음을 상기할 때, '위안소'와 '위안부'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세종『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중에서
February 10, 2026 at 1:21 PM
오키나와인들과 조선인 '군부' 사이에도 가해와 피해의 구조가 발생하게 되고 주민, 군, 조선인의 질서가 최악의 형태로 구현되는 가운데 구메섬에서 학살사건이 발발했다.
-오세종『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중에서
February 10, 2026 at 1:04 PM
이처럼 오키나와의 조선인들과 오키나와인들은 함께 섞이기 어려운 관계에 있었으며, 앞서 살펴본 것처럼 조선인은 부정적 가치를 껴안은 채 둘 사이를 갈라놓는 경계선 저 너머로 내팽개쳐져 버렸다. 둘 사이에 식민주의와 군이 개입됨으로써 억압을 아래로 이양하는 측과 이양당하는 측의 위계질서로 각각 편입되어 갔다. 오키나와인들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러한 질서를 내면화하고, 그 질서하에서 폭력행위에 가담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February 10, 2026 at 1:04 PM
혼을 내는 주체는 일본군이다. 그것은 교사가 학생들을 꾸짖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엄한 제재를 내포하는 것이었다. 설령 용기를 내어 조선인에게 식량을 가져다 주어도 일본군에게 발각될 경우 폭력이 가해지는 쪽은 식량을 건네준 오키나와 주민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든 조선인이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인과 관계를 맺는 일은 폭력의 공포를 유발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혼난다"라는 선생님의 말은 물리적인 폭력을 떠올리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인과 오키나와인 사이에 일종의 경계선을 강화하는 말이기도 했다.
February 10, 2026 at 1:04 PM
구시켄 히토시具志堅均는 학도병으로 동원되어 조선인 '군부'를 감시하도록 명받는다. 게으름을 피울 경우 몽둥이로 구타해도 좋다는 일본군의 허락이 있었다.
-오세종『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중에서
February 10, 2026 at 12:48 PM
이처럼 데면데면하게 때로는 부정적으로 상대를 객체화시켜 거리를 두려는 행동이 오키나와 사람들과 조선인 사이를 더 멀어지게 했으며, 이에 더하여 식민지주의 사상의 개입으로 주민과 조선인 간에 명확한 위계질서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조선인에게 '삼등국민'이라는 모멸적인 언사를 구사한 것은 식민주의적 위계질서가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깊숙이 내면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내면화된 위계질서는 언어로 표출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선인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February 10, 2026 at 12:48 PM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가 오키나와 사람들로 하여금 거리감을 느끼게 하였고, 그로 인해 서로를 "아주 다른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다른 인간"은 곧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단순히 다를 뿐인 음식문화, 냄새, 그리고 언어 등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두렵다"고 느끼게 하는 "인종주의적 혐오"를 유발시키는 촉진제가 되었던 것이다.
February 10, 2026 at 12:48 PM
실제로 '위안소' 이용권을 지참한 병사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어서 하라고! 아직 멀었나!"라며 재촉하는 소리가 민가 밖까지 들렸고, 5분 이상 넘기면 강제로 밖으로 끌어내었다고 한다. "아직 멀었나! 아직 멀었나!"라며 병사들을 흉내 내는 아이들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군의 성폭력 장치인 '위안소'가 민간인에게도 영향을 미쳤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세종『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중에서
February 10, 2026 at 12:41 PM
일본군은 '군부'만이 아니라 오키나와의 모든 주민을 잠재적인 스파이로 간주하였다. 주민과 군이 뒤섞여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군의 정보가 주민들에게 흘러들어가거나, 적에게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일본군이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주린 배를 움켜쥐고 돌아다니거나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일조차 스파이 행위로 간주하였다. 전시하에서 스파이로 내몰리는 것은 곧 살해로 이어지는 일이기도 했다.
또한 부상, 병, 영양실조 등으로 노동이 불가능해진 조선인들을 일본군은 가차 없이 내다버렸다.
-오세종『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중에서
February 10, 2026 at 12:37 PM
당연하게도 총알에 맞아 사망하는 조선인들이 속출했다.
-오세종『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중에서
February 10, 2026 at 12:34 PM
미군의 상륙작전이 시작되자 '작전'으로 전투가 격화되는 가운데 오키나와 사람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조선인들이 미군의 총탄에 맞아 죽어갔다.
그러나 일본군, 오키나와인, 조선인이 '평등하게' 죽음을 맞았던 것은 아니다. 무모한 작전으로 인해 총탄과 포탄이 날아드는 가운데 조선인 '군부'들은 계속해서 자재와 탄약 운반에 동원되는 등 죽음에 더 가까운 장소에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February 10, 2026 at 12:34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