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손끝”…팻 메시니, ‘문다이얼’의 긴 여운→내한 현장 압도 #팻메시니 #문다이얼 #GS아트센터
어두운 무대 위, 기타 하나를 마주한 팻 메시니의 손끝에서 미묘하고 정제된 선율이 흘러나왔다. 음악의 결마다, 조용한 호흡과 함께 무대 전체가 숨을 죽였다. 손목의 미세한 떨림조차 그의 연주에선 감정의 흔적으로 남았다. 객석을 에워싼 공기마저 음악에 녹아든 순간,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팻 메시니라는 이름 앞에 ‘거장’이라는 단어가 무게를 더했다.
팻 메시니는 23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 무대에 9년 만에 내한 공연자로 올랐다. 이날 ‘펫 메시니 드림 박스 / 문다이얼 투어’의 무대에서 그는 53장에 달하는 방대한 디스코그래피와 오랜 시간에 걸쳐 체득한 연주 철학을 증명했다. 어쿠스틱 기타의 섬세함과 일렉 기타의 강렬함, 바리톤 기타의 차분한 울림, 그리고 42현 피카소 기타까지, 다양한 악기를 고유의 감각으로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사유하는 손끝”…팻 메시니, ‘문다이얼’의 긴 여운→내한 현장 압도
특히 공연 초반에는 찰리 헤이든과 협업한 ‘비욘드 더 미주리 스카이’의 명곡을 따뜻하게 풀어냈다. 바리톤 기타로 연주한 ‘이파네마의 소녀’는 곡의 고요함과 메시니 특유의 서정적 해석이 빛났다. 최근 발표된 솔로 앨범 ‘문다이얼’ ‘드림박스’ 수록곡들은 장인다운 기량과 오랜 내공, 다시 한 번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온 긴 여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관객과의 질문에 메시니는 어린 시절 트럼펫 연주자 가족 사이에서 어떻게 기타를 잡게 됐는지 직접 풀어내며, 스티비 원더의 ‘송스 인 더 키 오브 라이프’를 최고로 꼽는다고 답했다. 음악뿐 아니라 인생을 관통하는 사유의 시간도 함께 전하는 듯했다. 공연 말미에 이르러서는 손목의 통증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변함없이 에너지와 열정으로 무대를 지켰다.
앙코르가 시작되자 이번 투어의 백미로 꼽히는 오케스트리온 세션이 전개됐다. 오케스트리온은 솔레노이드 등 기계적 장치를 활용해 자동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시스템으로, 무대 전후방에 감춰진 다양한 악기가 순차적으로 빛을 발하며 메시니의 기타와 한데 어우러졌다. 복잡한 구조 대신 효과적인 빌드업으로 관객들에게 별도의 악기 박물관을 통째로 옮긴 듯한 환상을 안겼다.
팻 메시니의 헝클어진 머릿결이 조명에 닿자마자, 재즈계의 ‘아인슈타인’이라는 별명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음악은 여전히 실험과 탐구, 그리고 본질에 다가서려는 치열한 손끝의 사유에서 시작돼 관객의 마음을 조용히 흔들었다. 단순한 연주를 넘어, 삶의 질감과 생각을 전하는 순간, 팻 메시니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완성됐다.
무대를 지배한 것은 손끝에서 번져가는 미묘한 온기와 흘러넘치는 사색의 깊이였다. 관객들은 각각의 곡이 끝날 때마다 오래된 친구와도 같은 안도와 잔잔한 떨림,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울림을 안고 조용히 박수를 건넸다. 음악 앞에서 나이를 잊고, 손목의 통증마저 극복한 팻 메시니의 연주는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문다이얼’과 ‘드림박스’로 쌓은 서사는 이제 또 한 번의 여운이 돼 서울 강남 GS아트센터에 오래 남았다. 팻 메시니의 투어는 25일까지 이어지며, ‘서울재즈페스티벌 2025’의 스핀 오프 기획으로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