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
banner
susukinohollow.bsky.social
레비
@susukinohollow.bsky.social
쫓겨나듯이 도망쳐 옴
실질적인 가치를 배제한 채 모든 게 기분에 의해 판단되는 것은 더불어민주당이든 정의당이든 혹은 진보당이든 피할 수 없는 맹점이며 한국 20대 남성들이 부리는 생떼 또한 자신만이 피해자라는 망상에서 기인한 기분을 달래달라는 투정이다.

그러나 내가 왜 여기서 줄곧 페미니즘 또는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비판을 해왔느냐면 그들에게는 그나마 다른 호모소셜들에 비해 희망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짧게 정리해서 “파시즘”에 경도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December 17, 2025 at 6:25 AM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나를 여성혐오자라고 힐난하고 싶겠지만(객관적으로 판단하지면 나는 확실히 여성혐오자가 맞긴 하다) 다시 한 번, 앞서 말했듯이 기분이라는 것은 정체성 이념 계급을 초월하는 것이고 즉 내가 비판한 정의의 변질과 호모소셜 내의 무비판적인 결속은 한국 여성 페미니스트들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당장 국민의힘은 작년 윤석열 탄핵소추안 2차 투표에서 박근혜 탄핵소추안 가결 때보다 훨씬 적은 수가 이탈했으며 내란에 반성하는 세력을 밀어내고 후안무치한 입장과 행동만을 보이고 있다.
December 16, 2025 at 5:48 AM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 도달한 것은 페미니즘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그것이 가부장제적인가” 또는 “그것이 여성을 제도적으로 억압하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기분 나쁜가“로 변질된 것이다. 페미니즘 리부트 초기에 남성들이 자신은 여성을 사랑하기에 여성혐오적이지 않다는 개소리를 하자 여성혐오에서 ”혐오“란 감정이 아니라 “사회와 제도적인 억압”이라고 말했던 컨센서스는 휘발되고 이것이 여성인 자신이 느끼기에 혐오스러운가 아닌가로 변질된 것이다.
December 16, 2025 at 5:48 AM
기분을 중요시하는 “정치적 올바름”을 근본이자 연료로 삼아 시작된 페미니즘 리부트는 첫 걸음을 남성들의 기분을 이용하는 “미러링”이라는 전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그것이 필수불가결적이었다거나 처음엔 효과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나는 동의하는 동시에 반대한다) 그것이 상당히 수사적이라는 걸 인지하는 사람들은 결국 가짜로 몰려 배제되었고 그것이 유의미한 운동이라고 믿는 사람만이 남아 지금의 Z세대 여성들을 길렀다(물론 기분을 중요시하고 기분으로 판단하는 것은 밀레니얼도 똑같고 Z세대 남성들은 훨씬 심하다).
December 16, 2025 at 5:48 AM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지만 동덕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거부에는 일언반구하지 않고 (딱히 비호하고 싶지는 않지만)오징어게임에서 황동혁이 짤막한 장면으로 현대자동차 노조와의 연대를 표시한 것을 두고 작품 자체의 여성혐오를 가리기 위한 연막이라고 깎아내리는 위근우가 대표적으로 돈을 위해 앞서 말한 결속의 기분을 해치지 않는 말만 의미 없이 반복하는 기수일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기분을 해치지 않는 사람만을 용인하고 제아무리 같은 여성이더라도 내부의 모순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은 “가짜”로 치부한다.
December 16, 2025 at 5:24 AM
그런 순전히 기능적인 소설 조차 나오지 않고 내부의 배타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에 그런 식의 합리화를 반박으로 내놓는 것은 여러모로 자기배반적일 것이다.

소위 “독서 붐”으로 생긴 독자들의 99퍼센트가 여성인 것을 감안했을 때, 그렇게 결속된 독자층이 페미니즘 커뮤니티, 더 나아가서 거대한 여성 호모소셜 안에서 공명함을 생각했을 때 이건 단순히 출판업계와 문단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정확히는 2010년대 이후 문단이 페미니즘 리부트와 떼놓고 볼 수 없음을 생각했을 때 관계성은 사실 반대일 것이다.
December 16, 2025 at 5:24 AM
솔직히 내가 이런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 건 나를 피로하게 만드는 것은 거의 나와 내 선택들 뿐이고 사회로부터 오는 압박은 거의 없기 때문인 것도 사실이다(나는 범성애자지만 근 몇년 간 시스젠더 여성들과만 연애를 했고 내가 굳이 범성애자인 걸 언급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성소수자라고 생각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허나 82년생 김지영이 비록 문학적으로 형편 없을 지언정 건조하게 가부장제를 묘사하고 비판함으로서 꽤 많은 남성들에게 영향을 줬음을 생각하면, 그런 형편 없는 문장들 마저도 대다수의 남성들을 불편하게 했음을 생각하면
December 16, 2025 at 5:24 AM
정리하자면 출판업계와 문단은 책을 팔기 위해 지친 감정을 치유해주는 데에 큰 역할을 하는 유대감, 결속됨에 매몰되어 그것을 방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전부 다 배제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친 감정을 치유해주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현실에 실재하는 폭력과 당신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간에 살아숨쉬는 존재를 외면하면서 결속을 다지기만 하는 것은 뭐랄까 좀 많이 비겁하지 않은가? 누군가는 내 주장을 “이미 현실에 지친 상황에서 허구에서조차 피로한 걸 볼 수는 없다”고 반박할 것이다.
December 16, 2025 at 4:49 AM
연대하고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런 이들의 존재여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 등등 수 없이 많다. 단적인 예시로 <항구의 사랑>이 퀴어 지인의 실제 사건들을 무단으로 훔쳐만들었다고 공론화된 후 김세희는 그 지인을 고소하는 상당히 퀴어혐오적이라고 보지 않기 힘든 행동을 했는데도 민음사와 문단의 비호를 받지 않았던가? 성노동자 여성들과 mtf 트랜스젠더들의 배제는 말할 필요도 없을테다. 그들이 요즘의 독자들 중 대다수에겐 불쾌한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만큼 문단은 그들의 서사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책을 팔아야 하니까.
December 16, 2025 at 4:34 AM
더 이상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우리는 우리끼리여도 괜찮다는 것을 상기해줌으로서 결속을 다지는 것인데 단 한 번도 결속을 다져볼 수 없었던 사람으로서 그것이 나쁜 일이라고 말히고 싶지는 않다. 유대감을 느끼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 아니던가?

허나 작금의 출판업계와 문단문학이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트위터 안의 논쟁적이지 않은 페미니즘 담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빼더라도 그 결속과 ”연대“ 안에 소속되는 여성들은 누구인가, 소속된 이들이 암묵적으로든 적극적으로든
December 16, 2025 at 4:34 AM
얼마나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핍박 받는 지를 섬세하게 그려낸 걸작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사랑해 마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당대 정치적 상황과 가부장제, 사회운동의 폐퇴 등을 겹겹이 쌓은 레이어로 풀어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예외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소설들은 여성, 또는 여성 둘 간의 관계 하나에 집중했다.

그런 소설들이(아마도) 의도한 바는 때론 여성혐오로 얼룩지기도 했던(그렇게 남성들에 의해 프레이밍되던) 여성 둘 간의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것이거나
December 16, 2025 at 4:34 AM
그 대신 쇼코의 미소는 두 여성 간의 미묘한 감정과 유대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얼마나 서늘해지고 불가해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했고 그 뒤로 수 많은 여성과 여성 간의 관계성에 대한 소설들이 “여성 서사”라는 이름 아래에 쏟아져나왔다. 최은영의 <그 여름>을 통해 단순한 유대를 넘어선 연인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김세희의 <항구의 사랑>은 비슷한 것을 처참하게 실패한 방식으로 이야기했고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황정은의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또한 여성 둘 간의 관계가 성질을 막론하고
December 16, 2025 at 4:34 AM
상당히 납작한 비교일 수도 있겠지만 예를 들어 한강의 <몽고반점>은 남성 예술가의 시선에서 여성을 향한 일그러진 욕망(욕정)과 성폭력 가해를 가감 없이 묘사함으로서 비루하고 하찮은 남성성을 강하게 비판하지만(이 단편은 2005년에 문예지에 실렸다) 쇼코의 미소 이후의 ”안온다정무해“로 분류되는 소설들에서는 몽고반점만큼의 적나라한 묘사는 아닐지라도 적극적으로 한국남성과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소설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양심적으로 말하자면 2024년부턴 거의 찾아보지 않았기에 존재한다면 알려주길 바란다)
December 16, 2025 at 3:49 AM
“안온다정무해”의 시발점이자 그로 분류되는 소설 중에 가장 안온다정무해하지 않은 최은영의 ”쇼쿄의 미소“부터 지금까지 그런 멸칭으로 묶이는 소설들(과 유행하는 SF 소설들)은 2015년 메갈리아와 페미니즘 리부트로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담론과 항상 결을 같이 해왔다. 한국 페미니즘 운동은 절대 2015년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지만 페미니즘 리부트 언저리에서 그 이후에 문단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과 그 이전의 작가들(대표적으론 한강과 황정은)의 페미니즘적 소설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December 16, 2025 at 3:49 AM
201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독서 붐과 그와 비슷한 시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소위 “안온다정무해”라는 멸칭으로 불리우는 문단문학 소설들은 그것이 왜 조금… 못되게 말해서 하찮은지에 대해서는 말할 것들이 정말 많지만(단적으로 2018년부터 2025년까지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단편들과 그로부터 3-10년 전에 수상한 단편들을 비교해보면 전자가 재미의 측면에서부터 한참 떨어진다) 그것이 왜 생겨났고 유지되는지는 단적으로 그즈음부터 유행한 글들이 전부 지친 감정을 치유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December 16, 2025 at 3:49 AM
조금만 엄지와 검지가 가까워져도 발작을 일으키고 여성이 혐오와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행동을 하면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징징대는 인셀들의 비논리적인 생떼는 본인들이 욕망하는 것으로부터, 또는 세상으로부터 무시 당한다는 착각에서 기인한 기분나쁨에서 온다. 윤석열과 트럼프에 대한 보도들과 기사 속에 있는 발언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감정적으로 예민한 인간들인지 알 수 있다. 남성은 기분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흔한 편견은 그들의 키나 체격, 성기의 크기와 강직도에 대해 조롱해보면 얼마나 개소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December 16, 2025 at 3:49 AM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기분은 정체성, 이념, 계급 그 어느것에도 국한되지 않는 개념이다. 정치판만 보아도 극우정당인 국민의 힘이든 보수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든 중도좌파인 정의당이든 상대를 비판하는 입장을 내비칠 때 하는 말을 자세히 보면 나이 젠더 출신과 관계 없이 객관적인 사실보단 상대 정당의 역린을 건드리려고 애쓰는 것을 볼 수 있다.
December 16, 2025 at 3:49 AM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단어가 2010년대 이후 리버럴이든 네오콘이든 현대정치에 있어서 갖는 상징성을 생각하면 “기분”이라는 것은 젠더 인종 성적지향 따위의 정체성이나 사상과 이념, 또는 계급 마저도 국한되지 않는 강력하고 광범위한 개념이다(그리고 고로 보편적인 한국남성이 남성 호모소셜 안에서 여성 및 소수자와 좌파를 혐오하는 발언을 내뱉고 찬동하는 것 또한 정치적 올바름인 것이죠).

앞서 말했듯 기분이라는 것은 한국만의 고유한 개념이 아니지만 그 캡처에서 말하는 것과 상식을 토대로 생각하면 한국이 유독 기분에 예민한 것은 자명하다.
December 16, 2025 at 2:47 AM
이번 제 믹스테잎 라이너노트입니다
December 15, 2025 at 7:29 PM
음악을 듣다 잠에 들면 일어나는 나쁜 일이 의식 안에서인지 바깥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크게 중요치 않을 지도 모른다. 이 또한 삶의 경계선이고, 여기서 노래하는 것은 “경계선에 선 자만이 볼 수 있는 혼”이기 때문에.
December 15, 2025 at 7:28 PM
이러한 대안적 음악 자장에서 공명할 여러 뮤지션들을 부르며 멜로디의 출처가 다양해졌다. 여러 얼터너티브한 장치를 통해 고유한 음악 세계를 보여오던 정제의 트랙 인트로는 공격성을 감성적인 영역으로 이끌고, HAN과 HIMINN이 각자 퍼지거나 흐드러지는 리프 위에서 맡은 후렴 역시 본작을 드림-팝과 공명케 한다. 근래 노이지한 서정성을 노래해 묶어낸 신인 Cultgazer도 무너지는 현장에 동참하며 존재감을 알리고, 生きる(ikiru)가 작품 한가운데 더한 그루브는 핵심을 찌른다.
December 15, 2025 at 7:28 PM
샘플로 주조하는 노이즈 록을 비롯한 인디 팝 사운드는 revy breaux 특유의 음악 세계를 꾸준히 경신한다. 이 모든 시도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비교적 정통적인 한국어 랩의 유산을 날로 탄탄하게 재현하는 본질에 있다. 타격감이 강해진 라이밍을 통해 물오른 랩의 감각에도 부디 주목해보면 좋겠다.
December 15, 2025 at 7:28 PM
아이묭(あいみょん)의 히트곡명을 비틀어 선공개 싱글로 이미 반향을 만든 〈너는 힙합을 듣지 않아〉는 끝내 ‘너’와 공명하지 못할 여집합을 적적히 묘사하기에, 기어코 삶의 현장에서 잠시 벗어난 삿포로에 이르러 비로소 그 여백과 동행하기 바라는 읊조림이 더더욱 여운을 남기는 이유일 테다.
December 15, 2025 at 7:28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