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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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의 그 당당함은 어디로 갔는지, 자기가 먼저 입술을 부딪쳐놓고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녜찭에 되려 당황스러운 건 당엾이야.
"형..?"
"어, 그... 내일 시험 잘 봐. 안녕"
"???"
끝까지 얼굴 한 번 들어보이지 않은 녜찭이 속사포처럼 짧은 인사를 남긴 채 도망가고.
당엾은 멀뚱히 혼자 남아버려.
그런데 방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천천히 되짚어 보던 당엾은 이번에도 머리를 감싸며 주인 없는 투정만 늘어놓을 뿐이야.
"아 진짜 신녜찭.. 이래놓고 어떻게 시험을 잘 보라는 거냐고"
January 12, 2025 at 4:28 AM
전처럼 빠르게 닿았다 떨어지는 게 아닌 꾸욱 눌러오는 입술에 최당엾은 말 그대로 붕괴직전.
하지만 언제까지 부끄럽다며 풀썩 엎어져 있을 수는 없잖아.
놀란 탓에 미처 감지 못한 눈으로 녜찭의 속눈썹이 보이고, 당엾은 처음으로 용기를 내보기로 해.
녜찭의 머리를 감싸기 위해 천천히 손을 올리고, 부슬부슬해 보이는 머리카락에 닿기 직전.
아쉬움만 남기고 입술이 홀랑 떨어진다.
갈 곳을 잃고 민망해진 당엽의 손이 애먼 교복셔츠를 쥐어잡으면, 앞에 선 녜찭은 당엾에게서 한 발자국 멀어지더니 고개를 푹 숙여.
January 12, 2025 at 4:23 AM
그런데 있잖아. 뽀뽀가 이렇게 금방 닿았다 떨어져야 하는 거야? 쫌 더 붙이고 있어도 되지 않나? 아니 어차피 그거나 이거나 아니야?

그 생각이 든 이후부터 내내 기회만 엿볼 신녜찭.
녜찭은 늘 그랬어. 궁금하거나 하고싶은 게 생기면 바로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거든.
그래서 시험 전날, 자신을 데려다주고 잘 들어가라며 인사를 건네는 당엾의 가방끈을 잡아당긴다.
January 12, 2025 at 4:17 AM
노트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손을 잡아다가 쪽
골똘히 생각하느라 볼록 튀어나온 볼에다가 쪽
조용히 영어지문을 중얼거리는 입술에다가 쪽.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면, 그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손발이 다 저릿거리지만, 전처럼 고개를 돌리진 않아.
귀가 빨개지며 앞으로 풀썩 엎어지는 최당엾의 반응이 쫌... 귀엽거든.
January 12, 2025 at 4:15 AM
-
어쩌다보니 최고의 방해수단을 알아낸 신녜찭.
그 방법을 아주 야무지게도 써먹을 게 분명해.
절대 다른 의도는 없다고. 이게 제일 효과가 좋으니까. 내가 뽀뽀하면 최당엾은 아무것도 못 하니까. 그래서 그런 거야.
라는 자신에게만 타당한 핑계를 가져다 붙이며 최당엾이 공부하는 게 보일 때마다 입술을 가져다 대겠지.
January 12, 2025 at 4:12 AM
뭐야 왜 저렇게 귀엽게 쳐다봐. 너한테 왜 그러냐고? 왜 그러긴, 너 공부 방해하려고 그러는 거지. 봐봐, 너 나랑 뽀뽀하고 나서는 아무것도 못 하잖아.
그리고 나도... 아무것도 못 하겠잖아.
나 진짜 미쳤나봐.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이러다 죽는 거 아니겠지?
January 12, 2025 at 4:06 AM
"아... 진짜 형 뭐야"
투정처럼 내뱉어진 그 말에 어떤 간지러움이 담겨있는지 너무나 잘 알겠어서.
"내, 내가 뭐..!"
던져지는 샤프에 움찔 놀라던 녜찭은 되려 큰소리를 내며 빠르게 눈을 깜빡거려.
"나한테 왜 그러냐고 신녜찭"
당엾이 붉어진 얼굴을 돌려 올려다보면, 녜찭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들고있던 볼펜꼭지를 물며 고개를 돌릴 뿐이야.
January 12, 2025 at 4:05 AM
"아, 응"
그제서야 쥐고있던 샤프가 움직이고, 그렇게 다시 공부에 집중하나 싶었던 최당엾은 얼마 안 가 또 멈춰버려.
때문에 녜찭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손에 잡힌 샤프만 바라보고 있어.
손가락 위에서 휙휙 돌아가기도 하고, 문제집 위에 점만 콕콕 찍기도 하고, 그러다 또 멈추고.
그렇게 제 역할을 하지 못 하던 샤프가 결국 책 위로 툭 던져지고.
당엾은 머리를 감싸며 책 위로 풀썩 엎어져.
January 12, 2025 at 4:04 AM
그 상태로 미동 하나 없이 몇십 분과 같은 몇 초가 흐르고, 녜찭이 먼저 고개를 돌리면서 정적이 깨져.
"너, 너 이제 다시 공부해"
그렇게 말하며 보지도 않는 문제집 지문 위로 의미없는 선이나 죽죽 그어대고 있는데 어라... 최당엾 왜 안 움직이냐.
배터리가 방전된 로봇처럼 굳어있는 당엾에 녜찭은 긴장을 놓지 못 하고 눈동자만 돌려 흘끔 바라봐.
어떡해 얘 진짜 고장났나 봐. 어떡하지 그냥 놔두기에는 너무 어색한데.
고민 끝에 조심스레 손을 뻗어 당엾의 책을 툭툭 건들면 말 그대로 화들짝 놀라기까지 해.
"야... 공부하라니까아"
January 12, 2025 at 4:01 AM
다시 말하지만 이건, 절대 내가 양심없이 너를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요령없이 다가간 얼굴에 서로의 코가 부딪히고, 입술은 방향을 잃고 입꼬리에 닿았지만, 쪽 하는 소리만은 선명해서.
그 소리만큼은 아무리 서툴렀다 해도 우리가 뽀뽀를 했음을 명확하게 말해주어서.
아주 짧게 닿았던 입술이 떨어지고 눈이 마주치면,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빨갛게 물들어 가.
"...이거 뭐야?"
"엉?"
"방금 뭐 한 거야?"
"몰라. 나도 처음 해봐"
November 26, 2024 at 11:55 AM
이러다 진짜 최당엾이 전교 1등을 하면... 나는 얘랑 사귄 게 뭐가 되지. 이 고생은 다 뭐가 되지. 안 되지 안 되지. 다 물거품으로 만들 순 없지.
어떻게 방해하지? 옆에서 건드려도 꿈쩍도 안 하는데?? 뭔가 더 충격적인 게 필요해. 더 강한 거. 오늘도 내일도 아무것도 못 하고 내 생각만 할 수 있게.
생각이 끝나자마자 녜찭의 입술이 당엾을 부르고.
그러니까 이건, 컴퓨터를 위해서야. 절대 내가 하고싶어서 하는 게 아니야.
"야 최당엾"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그 얼굴 위로 입술을 내려.
November 26, 2024 at 11:52 AM
그래서 녜찭네 집으로 가서 식탁에 책 펴놓고 나란히 앉는데 와 이게 전교 1등의 집중력인가.
옆에서 말 걸어도 대답하면서 문제 풀고, 옆에서 시끄럽게 닝텐도 게임을 해도 신경 하나 안 쓰고,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찔러도 미동이 없어. 어 근데 얘 볼살 진짜 말랑거린다.
암튼 그렇게 공부하는 최당엾 가만히 바라보는데 신녜찭은 문득 얘를 이렇게 가만히 놔두는 게 맞나 싶어.
나 오늘 얘 방해하려고 만난 거 아닌가. 지금 공부 너무 열심히 하는데? 완전 공부에 삘 받았잖아 지금.
November 26, 2024 at 11:51 AM
그런데 카페도 주말이라 그런지 자리도 없고, 있다고 해도 사람도 많고, 시끄럽고, 암튼 여러모로 절망적인 상황에 최당엾 심각해지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신녜찭이 옆에서 스윽 고개를 내민다.
"우리집 갈래?"
"형네 집?"
"어. 지금 아무도 없을걸?"
엄마랑 아빠는 부부동반 모임 가셨고, 신셩챥은 공부하는 카페인가 머시긴가 갔고.
참나, 세상에 공부하는 카페가 어딨어. 신셩챤 공부한다고 뻥 치고 놀러간 게 분명해.
November 26, 2024 at 11:43 AM
아니나 다를까 공부하러 가는 사람답지 않게 발걸음이 가벼운 그 몸을 잡아다 매고있던 가방을 열어보면, 닝텐도 게임기에, 충전기에, 노트 하나랑 볼펜 하나가 다임.
"공부 한다며. 이게 공부하는 사람 가방이야?"
"아잇.. 왜 남의 가방을 열어보고 그르냐"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살포시 가방을 닫는 녜찭에 당엾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 젓다가 그냥 카페로 향한다.
스카 데려갔다가는 신녜찭이 좀 쑤셔서 견디기 힘들 테니 말이야.
November 26, 2024 at 11:23 AM
그래서 주말에 되도않는 공부 한다면서 최당엾에게 만나자고 하는 신녜찭.
원래 집에서 공부하던 최당엾 그 말에 일단 나오긴 하는데, 아니 이 형을 데리고 어디를 가냐고.
"스카 갈래?"
"스카가 뭔데?"
...이것 봐. 이 형을 데리고 어디를 가냐고.
녜찭읒 공부고 뭐고 당엾이랑 놀 생각에 잔뜩 신이 나서는 팔랑거리겠지.
스스로에게는 이건 다 최당엾 공부 방해하려는 거야. 방해하려고 만나자고 한 거야.
그렇게 핑계를 대면서 말이야.
November 26, 2024 at 11:22 AM
하지만 그건 녜찭이 주제넘은 걱정이었을 뿐. 시험기간에 가까워지자 다시 공부에 열중하는 당엾에 녜찭은 이유모를 묘한 아쉬움이 든다.
"나 갈게. 내일 봐"
"어.. 그래"
레슨받는 곳까지 데려다 주고는 망설임없이 뒤도는 당엾에 괜히 서운해진다고.
언제는 놀러가자고 난리더니, 지금은 뒤도 안 돌아보네.
야 최당엾, 공부가 그렇게 좋냐? 어?
"나 심심하다고..."
큰일이야. 너랑 노는 거에 재미 들렸나봐. 요즘은 바이올린도, 게임도, 다 재미없어. 너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단 말이야.
November 26, 2024 at 11:07 AM
"너 이렇게 놀아도 돼?"
조막만한 양심을 담아서 물으니 얘가 뭐라는지 알아?
"형이 지금의 행복이 중요하다며"
어머 얘 좀 봐. 내가 너한테 도대체 뭐라고. 왜 전교 1등이나 하는 똑똑핸 애가 어디가서 바이올린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꼴통 소리나 듣는 내 말 한 마디를 그렇게까지 가슴에 새기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 공부 잘 하는 애 꼬드겨서 노는 기분 들잖아"
"왜? 내가 형을 꼬드긴 거잖아. 같이 놀자고"
"그건 맞지만..."
너가 모르는 깊은 사연이 있어 임마.
November 26, 2024 at 11:05 AM
그런데 이상하지. 그 이후로 최당엾은 하굣길에 옆으로 새는 경우가 많아졌어.
같이 산책을 하자고 하질 않나, 농구를 하자고 하질 않나(우쒸 나 키 작은 거 알면서),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질 않나.
심지어 오늘은 학교 앞 편의점에서 불닥보끔면을 먹자고 하네. 너 그런 것도 먹을 줄 아는 애였냐.
암튼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좋아. 자기가 먼저 공부 안 하고 나랑 놀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그런데 말이야. 너 이렇게 공부 안 하고 나랑 놀기만 해도 돼??
November 26, 2024 at 11:05 AM
야 최당엾. 적어도 지금은, 너가 안경을 안 끼고있는 게 다행이야.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 해서 다행이야.
왜냐하면, 나 지금 되게 못난 얼굴을 하고 있거든.
이 표정의 원인을, 이 감정을, 굳이 정의하자면... 미안함에 가까운 것 같아. 아니 사실은, 미안함 말고도 하나가 더 있지만 그건 말하지 않을래. 그냥 모른 척 할 거야.
그러니까 최당엾, 이제 그만 웃어. 니가 아무리 웃어도, 난 널 좋아하지 않을 거란 말이야. 좋아하면 안 된단 말이야. ...아 그냥 컴퓨터 포기할까.
November 26, 2024 at 11:00 AM
이제는 퉁명스러운 말 뒤에 있는 그 마음이 다 보여서. 당엾은 일부러 어제 학원을 빠진 것 때문에 혼나다가 안경이 부러졌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겠지.
사실은 혼나는데도 기분이 좋았어.
신녜찭이랑 더 가까워진 것 같았거든.
그 순수한 애정 때문일까. 당엾의 웃음은 자꾸만 녜찭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어.
웃네. 넌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냐. 최당엾 너 왜 이렇게 착하냐. 차라리 못된 놈이면 내가 이렇게까지 미안하지는 않을 텐데.
"웃기는.. 문제집은 보이냐"
"옆에서 읽어줄래?
"난 봐도 몰라"
"그럴 것 같았어"
"우쒸"
November 26, 2024 at 10:57 AM
뭐야뭐야뭐야..!! 순식간에 코앞에 놓이는 잘생긴다람쥐얼굴에 녜찭은 몸을 뒤로 빼며 얼굴이 화르륵 달아오르겠지.
"야, 야.. 너무 가까워"
"미안. 형 목소리가 안 좋은데 얼굴은 안 보여서"
"니 상태가 더 안 좋아보이거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당엾에 녜찭은 화끈거리는 볼을 문지르며 내내 머뭇거리던 물음을 건네봐.
"어제 많이 혼났어?"
"음... 응"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따라온 건 너다?"
"알아"
얄궂게 말하고 있지만 자신이 걱정되어서 아침부터 찾아왔을 녜찭을 다 알아서 당엾은 푸스스 웃어보인다.
November 26, 2024 at 10:55 AM
-
다음 날, 녜찭은 당엾이 못내 신경쓰여서 먼저 그 반으로 향한다.
마침 바로 앞자리가 비어있길래 잠깐 그 앉아서 바라보는데 오늘은 안경을 안 쓰고 있네?
"안경 어디갔냐"
"...녜찭이 형?"
안경이 없어서 못 알아보는 건지 눈을 가늘게 뜨며 목을 쭉 빼는 당엾의 얼굴 앞에 손을 휙휙 흔들어.
"뭐가 보이긴 해?"
"아.. 안경 부서졌어"
"뭐야.. 괜히 미안해지게"
학원에도 빠지고, 안경도 부러지고. 혼날 거리가 많았을 당엾이 안쓰러워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면, 가만히 녜찭을 바라보던 당엾의 얼굴이 불쑥 다가온다.
November 26, 2024 at 10:52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