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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계 / 초자아를 꽤 무시하고 달릴 예정
그리고 자기도 준이 어떻게 될까봐 무서워 죽겠는데 꾹 참고 괜찮다며 달래서 진정시켜주는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좋겠다
November 26, 2024 at 4:00 PM
버키 귀에는 “내 속눈썹이”로 시작한 스티브의 말 중 단 하나도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어. 그냥 아 몰라 다시 보니까 사라진 것 같은데? 하고 모른 척 고개나 돌려버렸지. 그러다 다시 스티브 쪽을 힐끗 봤을 땐 매일 보는 스티브 눈이 되게 예쁘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November 26, 2024 at 3:48 PM
김준 능력 쓴 후에 너무 큰 충격으로 코피 쏟으면서 말도 못하고 헐떡이다가 겨우 말을 뱉긴 하는데 앞뒤도 안 맞고 두서도 없어서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런 게 생각났다
November 26, 2024 at 3:20 PM
600년을 겪어도 늘 처음 같은 끔찍한 수치심과 분노가 랑을 죄어왔어. 랑은 이를 악물고 둔갑이 풀리지 않게 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어. 여기서 둔갑마저 풀려서 텅빈 소매가 늘어지는 건...차라리 쳐맞아 뒤지고 말지.

그중 서열이 높아보이는 놈 하나가 비릿하고 역겨운 표정을 지으며 여전히 바닥을 기고있는 랑에게 가까이 다가왔어. 그러고는 랑을 볼을 쓸고 턱을 잡아 얼굴을 치켜올렸지
November 26, 2024 at 1:53 PM
랑의 귀가 먹먹해 지며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고 놈들은 저들끼리 쑥덕거리며 음흉한 시선을 주고받았어. 

“씨발…뭐라는거야…”

랑이 떨리는 손을 들어 제기능을 못하는 귀를 힘없이 내리치길 반복했어. 그렇다고 귀를 찌르는 이명이 사라지진 건 아니었지만. 놈들은 낄낄거리며 그 모습을 힐끗거렸어. 놈들 뒤통수만 봐도 병신이라며 비웃는다는 걸 알겠어
November 26, 2024 at 1:52 PM
랑은 저를 문 놈들을 똑같이, 아니 배로 물어주기를 택했어. 자신을 경멸하거나 동정하는 눈깔들은 뽑아버리고 모욕하는 입은 찢어버리면 그만이야. 놈들은 몸을 덜덜 떨면서도 형형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노려보는 랑을 흥미롭게 쳐다봤어. 방금의 건방진 말의 대가로는 머리채를 잡히고 뺨이 후려쳐졌지
November 26, 2024 at 1:50 PM
랑은 저를 비웃고 모욕하는 놈들에게 한쪽 금안을 뜨고 매섭게 노려보며 이죽였어.

“...그러게, 사지 멀쩡하게 달린 놈들이 반쪽짜리 병신 하나 못 막고 조직의 반이 죽사발이 나셨네. 나같으면 쪽팔려서 제 발로 삼도천에 뛰어들텐데, 찌질한 새끼들”

랑이 놈들을 향해 피섞인 침을 뱉었어. 인생에 이딴 개같은 이벤트가 처음도 아니거든. 삶에 미련없이 앞뒤 안가리고 들쑤시고 다녔으니 당연하지. 모욕을 들었다고 울 시기 역시 한참 지났어. 운다고 달래줄 놈도 없어진지 오래고
November 26, 2024 at 1:4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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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새끼 이거 반쪽에 몸에 하자도 있는 병신이었잖아?” 

쉬지않고 가해지는 폭력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고 요력까지 바닥나 한손을 제대로 못 쓰는 걸 놈들에게 들켜버렸어. 사내들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바닥에서 바르작 거리는 랑을 발로 툭툭 건들이며 저급한 모욕들을 뱉어냈어. 랑은 저를 둘러싼 놈들이 낄낄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했어. 하지만 한계에 몰린 몸은 덜덜 떨리기만 했지. 랑이 일어나는데 실패하고 풀썩 쓰러질 때마다 놈들의 비웃음 소리는 더욱 커졌어
November 26, 2024 at 1:47 PM
벼랑 끝으로 몰린 마음은 제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조차 못하게 했고, 동생의 하나뿐인 손에 검을 들라 명해 배를 갈랐지. 그날 랑이 얻은 상처는 배의 자상 뿐만이 아니었어. 이제 랑은 그 누구도 온전히 믿고 기댈 수 없게 되었어. 방금 그의 세상이 그를 무참히 배신했거든
November 26, 2024 at 1:44 PM
순간 둔갑이 풀리고 생을 무참히 끊어내던 손이 있던 곳엔 바람이 스쳐 지나가 텅 빈 소매만 펄럭였어. 쥐고 있던 검은 피가 낭자한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고. 연은 저를 보자마자 모든 경계를 푼 제 어린 동생을 보고 참담한 기분이 들었어. 어쩜 이리도 저를 믿는지. 연은 제게 안겨 보고싶어 죽는 줄 알았다며 우는 랑을 보며 다짐했어. 널 처음 본 날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처럼 너를 지켜주겠다고. 그렇게 연은 랑에게 지울 수 없는 끔찍한 상처를 남겼어
November 26, 2024 at 1:42 PM
그렇게 매일같이 연습한 랑이의 둔갑 실력이 어느정도 안정됐을 때 연은 동생과 자신과 신주와 있을 때만 둔갑을 풀고 편하게 있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했지

그렇기에 고을 하나를 도륙하고 형과 다시 만났을 때 랑은 가짜일지도 모르는 천호 앞에서 바로 둔갑을 풀어버렸어. 그렇게 보고 듣고 싶었던 자신을 부르는 형의 모습과 목소리에 랑의 눈엔 눈물부터 가득 차올랐으니까. 랑에게 연은 약점을 내보여도 해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내편이었어. 하나뿐인 손으로 손가락 걸고 약속했잖아
November 26, 2024 at 1:41 PM
그렇게 랑이 새 보금자리에 어느정도 적응한 다음 연이 처음으로 가르친 건 둔갑술이었어. 랑은 반이지만 요괴로 태어났잖아. 인간 세상도 그렇지만, 요괴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몸 어딘가를 못 쓰는 게 티나는 건 자신의 약점을 대놓고 드러내고 다니는 위험천만한 짓이었어. 그래서 연은 랑이에게 둔갑술로 손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법을 알려줬고 매일같이 연습시켰어. 물론 둔갑으로 만든 손을 진짜처럼 쓸 수는 없었지. 그야말로 눈속임 이니까. 그래도 안전면에서 없는 것보단 훨씬 나았어
November 26, 2024 at 1:38 PM
괴물이라 불리고 허구한 날 집단으로 학대만 당했던 랑이인지라 기본적인 씻는 법이나 옷 입는 법, 뭐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어. 연과 신주는 차오르는 분노를 느끼며 하나하나 도와주고 알려주고 그냥 해줬지, 주로.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있으니 많은 부분에서 랑이 편하게 지낼 수 있게 신경썼어. 둘 다 극성인 탓도 컸어. 물론 랑이는 좋았지. 보호나 챙김을 받는 것도 사랑받는 것도 처음이었으니까. 제 형이 바람을 불어와 크고 따뜻한 손으로 젖은 머리를 만져줄 때면 기분이 너무 좋아 꼭 날아갈 것만 같았거든
November 26, 2024 at 1:36 PM
그렇게 과다출혈과 아귀독에 사경을 헤매는 제 동생을 보며 하루에도 몇번씩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며칠, 아이가 마침내 눈을 떴어. 분명 아플 것이 뻔한 데도 소리하나 못 내고 놀라 눈만 껌뻑이다 눈물을 쏟아내는 아이를 보며 연은 생각했어. ‘내가 지켜주겠다’고. 형제가 있는 제 친우들이 내심 부러웠던 탓에 생사도 모르고 살던 망나니 부친에게 동생이 있단 소식을 듣고 별의별 계획을 다 세웠었는데, 다 무산이야. 그날부터 이연과 신주의 금지옥엽 이랑 보살피기가 시작됐어
November 26, 2024 at 1:34 PM
그렇게 삶의 의지를 잃고 지내다가 디스토피아 세계답게 준이 있던 부대가 공격당하고 그 사이에 구조 된 준이가 절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느리게 회복하고 서서히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도 열면 좋겠다
November 26, 2024 at 1:21 PM
준이도 처음엔 살기 위한 본능적인 발악으로 심하게 저항을 했지. 몸부림을 치고 혀를 깨무는 등 자해를 하기도 했어. 덕분에 입에는 재갈이 물렸지. 기억이 자극적일수록 준이가 정신을 못차리고 괴로워 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놈들은 이를 이용하기 시작했고 나중엔 이미 고문으로 죽어버린 시체를 만지게 하기도 했어.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끔찍한 기억들, 특히 수많은 죽음들에 거름망 없이 노출된 준이 정신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나중에는 정말 꼭두각시 인형처럼 늘어져서 죽여달라는 말만 반복해
November 26, 2024 at 1:20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