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의견을 내세울 곳과 아닐 곳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나는 치킨이 먹고싶지만 나머지 사람들이 피자를 먹고 싶어해서 내가 양보하는건(*단, 내가 피자 알레르기가 없고 차별이 아닐 것이 전제됨), 집단생활을 위한 협력이 된다.
그러나 수영장 빌런이나 가정폭력에 사례처럼 잘못한 게 없는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굴종하는 것은 가해자에게 “이래도 되는구나“ 라는 못된 경험을 학습시켜 더 큰 빌런으로 만들 뿐이다. 성추행범도 그렇다. 회식자리니까 분위기 깨지 않게 나만 참아야지=가해자가 점점 대담해지게 만들 수 있다.
November 11, 2024 at 12:27 AM
자기 의견을 내세울 곳과 아닐 곳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나는 치킨이 먹고싶지만 나머지 사람들이 피자를 먹고 싶어해서 내가 양보하는건(*단, 내가 피자 알레르기가 없고 차별이 아닐 것이 전제됨), 집단생활을 위한 협력이 된다.
그러나 수영장 빌런이나 가정폭력에 사례처럼 잘못한 게 없는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굴종하는 것은 가해자에게 “이래도 되는구나“ 라는 못된 경험을 학습시켜 더 큰 빌런으로 만들 뿐이다. 성추행범도 그렇다. 회식자리니까 분위기 깨지 않게 나만 참아야지=가해자가 점점 대담해지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