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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은 녹기 위해 태어났다는 문장을 무심히 뱉었다
녹기 우해 태어났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녹고 있는 얼음 앞에서
또박또박 섬뜩함을 말했다는 것
굳기 위해 태어난 밀랍초와
구겨지기 위해 태어난 은박지에 대해서도

그러려고 태어난 영혼은 없다
그러려니 하는 마음에 밟혀 죽은
흰쥐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흰쥐, 한마리 흰쥐의 가여움
흰쥐, 열마리 흰쥐의 징그러움
흰쥐, 수백마리 흰쥐의 당연함

질문도 없이 마땅해진다
흰쥐가 산처럼 쌓여 있는 방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잘 수 있게 된다
June 6, 2025 at 8:11 AM
그들은 부숴야 할 돌멩이를 찾아 헤맸다 돌 하나를 부수기 위해 집 전체를 부숴야 할 때도 많았지만

돌멩이가 넘어뜨린 것이 자신의 사랑이고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어려울 것이 없었다

불씨, 안희연.
June 6, 2025 at 8:07 AM
우리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 순 없을 겁니다 오랜 정적을 깨는 목소리가 있었다 밧줄은 두갈래로 갈라졌다 몇몇은 동의의 의미로 갈라져나온 밧줄을 잡았고

목적지가 같다면 만날 수 있겠지, 짧은 인사를 끝으로 멀어져갔다

거짓을 말한 사람은 없었다, 안희연.
June 6, 2025 at 8:04 AM
그에게 백일홍 꽃밭과 반딧불이 부락을 주었고
따뜻한 햇살을 비추며 괜찮다, 괜찮다 속삭였지만

삶과 죽음을 가르는 건 단 한걸음 차이였다고 했습니다
설탕이 물에 녹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안희연.
June 6, 2025 at 8:01 AM
부품이 하나 부족했나요?
이를테면 심장 같은,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안희연.
June 6, 2025 at 7:59 AM
할아버지, 영원은 얼마나 긴 시간이에요?
파닥 거릴 수 없다는 것은

빛나는 꼬리를 보았다
두 눈에 심해가 고여있다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안희연.
June 6, 2025 at 7:57 AM
한없이 길어진 목으로
삶이 되지 못한 단 하나의 영원을 생각했다
손톱 밑에 박힌 유리 조각을 빼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안희연.
June 6, 2025 at 7:56 AM
아가야, 저 침묵을 보거라
한 사람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되었구나

흩어진 유리 조각 틈에서
물고기 한마리가 배를 뒤집고 죽어 있었다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안희연.
June 6, 2025 at 7:55 AM
한 그림자가 다가와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빛이 너무 가까이 있는 밤이었다

역광의 세계, 안희연.
June 6, 2025 at 7:53 AM
그리고 문틈으로 스며드는 빛을 보았다 아주 가까이에 있는 빛을 보았다

빛의 산이 멀리 있다는 생각 때문에 한번도 들어가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빛의 산, 안희연.
June 6, 2025 at 7:52 AM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온전히 나를 잃어버리기 위해 걸어갔다
언덕이라 쓰고 그것을 믿으면

예상치 못한 언덕이 펼쳐졌다
그날도 언덕을 걷고 있었다

비교적 완만한 기울기
적당한 햇살
가호를 받고 있다는 기쁨 속에서

한참 걷다보니 움푹 파인 곳이 나타났다
고개를 들자 사방이 물웅덩이였다

나는 언덕의 기분을 살폈다
이렇게 많은 물웅덩이를 거느린 삶이라니
발이 푹푹 빠지는 여름이라니
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니

언덕은 울상을 하고서
얼마 전부터 흰토끼 한마리가 보이질 않는다 했다
June 6, 2025 at 7:45 AM
June 4, 2025 at 5:23 AM
죽은 나무에서만 자라는 버섯들
기억하기를 멈추는 순간,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방
어제 놓친 손이 오늘의 편지가 되어 돌아오는 이유를
이해해보고 싶어서

자이언트, 안희연.
June 4, 2025 at 5:21 AM
그게 뭐든 잃어버린 것이 있어
창가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자이언트, 안희연.
June 4, 2025 at 5:20 AM
슬픔에 가까워 보이지만 슬픔은 아니다
온몸이 잠길 때도 있지만
겨우 발목을 찰랑거리다 돌아갈 때도 있다

사랑의 형태, 안희연.
June 4, 2025 at 4:40 AM
저것은 개가 아니다
개의 형상을 하고 있대도 개는 아니다

사랑의 형태, 안희연
June 4, 2025 at 4:38 AM
풀리지 않는 매듭이라 자신했는데
이름을 듣는 순간 그대로 풀려버리는

깊은 바닷속 잠수함의 모터가 멈추고
눈 위에 찍힌 발자국들이 소리 없이 사라진다

냄비 바닥이 까맣게 타도록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등 뒤에 있는
이 모든 것

사랑의 형태, 안희연.
June 4, 2025 at 4:38 AM
마음속에서 호수는 점점 커져갔다 어떤 날엔 세상 전체가
호수로 보일 때도 있었다 슬픔이 혹독해질수록 그랬다

알라메다, 안희연.
June 4, 2025 at 4:28 AM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무얼 기다리고 있지?
왜 여기 남겨진 거지?

빛의 살점 같은

제법 깊은 곳까지 떠내려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출발할 수 없다고 했다

마중, 안희연.
June 4, 2025 at 4:23 AM
낮게 나는 새들이 있고 그보다 낮을 수 없는 마음이 있고

누군가 나를 흔드는 것 같다

선잠, 안희연.
June 4, 2025 at 4:19 AM
나는 따뜻한 차를 내어주었다 그가 몸을 좀 녹였으면 했다

그를 녹이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그는 텅 비어 보인다 한모금 한모금 마실 때마다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그가

녹는다 식탁 위엔 덩그러니 찻잔만 남아 있다

선잠, 안희연.
June 4, 2025 at 4:18 AM
할아버지는 뭔가를 쪼개고 있었다. 아가야, 나는 이것을 작게 만들어야 한단다. 그리고 아주 깊숙한 곳에 감추어야 하지. 어디가 깊은 곳인데요? 얘야, 지척에. 흘러가버리는 순간순간에. 그것은 눈부시게 빛났지만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안희연.
June 4, 2025 at 4:10 AM
당신이 잠에서 깨어날 때 사슴은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당신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아침 햇빛을 보면 자주 무릎이 꺾인다 자꾸만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연루, 안희연
May 2, 2025 at 7:51 AM
이제 그만 그를 보내고 삶 쪽으로 걸어나오라는 말을 한다

망종, 안희연
May 2, 2025 at 7:44 AM
눈부시게 푸른 계절이었다 식물들은 맹렬히 자라났다 누런 잎을 절반이 넘게 매달고도 포기를 몰랐다

치닫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는 듯

망종, 안희연
May 2, 2025 at 7:44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