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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에도 있구요
December 17, 2025 at 7:49 PM
하... 우발성 개념 너무 어렵다
December 13, 2025 at 5:57 PM
디지털 환경을 이야기할 책들
교수님이 디지털 환경에 대해 수업할 책을 세네권 골라보라고 하셨다. 내가 잘 아는 책으로 내가 이야기하기 즐거워할 책으로 골라보라고 했다. 그때 바로 생각난 것은 Aden Evens의 디지털과 그 불만이라는 책이었다. 내가 읽어 본 책들 중에서는 가장 디지털에 대해 본질적으로 철학적인 관점에서 질문하는 글이었고 그리고 또 들뢰즈적인 관점에서 풀어나가기에 더 흥미로운 책이었다. 아마 수업을 준비하면서 이 곳에 글을 더 써보지 않을까 한다. 대략적으로는 디지털 환경이 이진법으로 잘못이해되어 왔으며 이를 creativity의 근본적인 힘으로 개념화되는 contingency라는 개념과 함께 질문하는 글이다. > 디지털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떨쳐낼 수 없는 그 느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의 기기들은 너무나 훌륭하지만, 스마트폰과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우리는 왜 씁쓸함과 무기력함, 그리고 소외감을 느끼는 것일까? 『디지털과 그 불만(The Digital and Its Discontents)』은 이러한 불안을 독창적으로 설명하며, 우리의 디지털적 삶과 비디지털적 자아 사이에 더 만족스러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이는 우리가 기술을 삶에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길이다. > 저자 에이든 에반스(Aden Evens)는 보편적인 기술 원리들, 특히 '이진 논리(binary logic)'를 분석하여, 이러한 원리들이 특정한 사고방식은 조장하는 반면 다른 방식들은 더 어렵거나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디지털 기계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은 바로 **'우발성(contingency)'**이다. 이는 모든 규칙을 거부하는 존재론적 원칙이다. 인간이 디지털 기계를 통해 우리 자신 및 세상과 더욱 깊이 관계 맺을수록, 우리는 우발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 결과, 삶의 가장 창의적이고 새로운 가능성의 원동력이 되는 '우연'과 '예기치 않은 것'들을 우리 삶에서 추방하고 있다. 두번째 책은 2009년이라 살짝 오래된 책이지만 디지털 환경을 역사적 관점에서 프레임으로 풀어보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역사적 흐름으로는 Evens의 책보다 먼저 읽는게 좋을 테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후에 읽는 것이 좋을 것 같은 Anne Friedberg의 가상의 창문이란 책이다. 작가는 르네상스 회화부터 현대의 컴퓨터 윈도우까지 '창(Window)'이라는 개념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이는 컴퓨터 운영체제 윈도우와도 연결된다. >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회화론(De pictura)』(1435)에서 화가들에게 그림의 프레임을 '열린 창'으로 간주하라고 유명한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알베르티의 이 은유를 출발점으로 삼아, 프리드버그는 건축적 창의 역사, 유리와 투명성의 발달, 그리고 사진, 영화, 텔레비전, 디지털 이미징 장치의 등장을 다루며 원근법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적합니다. 알베르티의 은유적 창인 '단일 시점 원근법(Single-point perspective)'은 현대 회화, 현대 건축, 그리고 동영상 기술에 의해 오랫동안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 그러나 프리드버그는 20세기의 대부분 동안 동영상의 지배적인 형태는 여전히 '단일 프레임 속 단일 이미지'였다고 지적합니다. 예컨대 입체파(Cubist) 회화로 대표되는 파편화된 모더니즘은 주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아방가르드) 작업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개의 '창'이 공존하고 겹쳐지는 컴퓨터 스크린 위에서, 원근법은 마침내 종말을 맞이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나는 그녀의 결론에는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 편이다. 원근법은 과연 종말을 맞이했는가?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 강화된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는 Evens의 책을 읽으면 어떤 방향으로 강화된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겨나게된다. 세번째 책 Giuliana Bruno의 Atmospheres of Projection은 그렇다면 디지털 환경 속에서의 이야기들이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담은 책이 될 수 있다. (물론 작가가 그런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은 아니다) > 문화사, 시각 연구, 그리고 미디어 고고학을 결합하여, 브루노는 투사(projection), 분위기(atmosphere), 그리고 환경의 상호관계를 고찰한다. 그녀는 시각 문화 속 '투사'와 '분위기'의 역사를 탐구하며, '대기적 사고(atmospheric thinking)'와 '원소적 미디어(elemental media)'를 사용하여 투사적 상상력을 재발명하고 있는 현대 예술가들에게 이 역사가 갖는 지속적인 중요성을 조명합니다. 이렇게 디지털 -> 프레임 -> 공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마 이 Christopher Bardt의 The Feeling of Space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여러 가지 형태의 공간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플라톤 시대부터 디지털 시대에 이르기까지, 삶을 하나의 '공간적 프로젝트'로 형성하려는 인류의 열망에 대한 풍부한 도판이 수록된 탐구. '장소(Place)'는 실재하는 것이지만, '공간(Space)'은 일반적으로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인 것으로 인식됩니다. 크리스토퍼 바트는 『공간의 감각(The Feeling of Space)』에서 이러한 해로운 현대적 이분법을 탐구하고, 역사적으로 우리의 공간 감각을 비물질화해 온 모순된 충동들을 추적합니다. 그 충동이란 바로 두려움과 경이, 무한함과 친밀함에 대한 갈망, 그리고 자율성과 소속감에 대한 욕구입니다. 바트는 풍부한 도판과 더불어 예술, 기술, 철학에 대한 고찰을 통해, 만약 우리가 공간을 먼저 **'느끼는(feeling)'**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공간을 우리의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즉,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생각의 교환—에 주체성(agency)을 부여하는 '실체'로서 다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너무 디지털에서 확장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일단 이 네권의 책을 정리해보면서 수업을 하면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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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10, 2025 at 12:08 PM
생각을 멈추기 위해
사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잘 모르겠다. 저번주에 너무 힘들었다는 기억만 선명하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통화가 생각보다 깊게 기억 속에 자리잡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다시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온다. 근육이 아파온다. 온 몸이 통증을 호소한다. 어제도 오늘도 수업이 있었고 사실 머리가 약간은 멍해있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생각을 피하기 위해서 머리가 생각을 피하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나마 마지막 통화를 할 수 있었기에, 내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기뻐해야할까 아니면 몇년동안이나 뵙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보냈다는 사실에 슬퍼해야할까. 호상이란게 과연 있나. 다들 괜찮다고 하는데 정말 괜찮은건가? 나만 이렇게 여전히 슬퍼하는 걸까. 잘 모르겠다. 원래 이렇게 힘든것인지 아니면 그저 내가 혼자서 주말동안 오롯히 혼자서 그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니면 그동안 찰랑이던 감정이 터져나온 것인지 잘 모르겠다. 처음 이틀동안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왔다.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어떻게 묘사해야할지 모를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흐릿한 세상 속에 덩그라니 혼자 남아 부어버린 감정들 사이로 부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고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이러한 감정을 전염시키고 싶지 않았다. 내 개인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혼자있기 싫었다. 일요일쯤이 되자 몸이 아파왔다. 머리도 아파왔고 근육들이 통증을 뿜어냈다. 두통약을 먹어도 두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잠을 자다가도 몇번씩 깨어났고 꿈 속에서는 다른 모습들의 공포가 나를 찾아왔다. 내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장점이 잠을 깊게 깨지 않고 잔다는 것이었을 텐데. 아쉽네 유일했던 장점마저 사라져버린 것일까. 사실 지금도 난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생각하기 어렵다. 감기약을 먹고 머리가 아픈 것은 나아졌지만 부어있는 감정은 여전하다. 노래만 들어도 눈물이 나오고 그 당시를 생각하면 코가 시큰해진다. 생각하고 싶지만 기억해야한다. 죄송스러운 기분이 들고 미안하다는 마음이 함께한다. 그리고 또 미래에 이러한 감정들을 또 겪어야할 두려움이 너무 거대해서 바라보고 싶지 않을 만큼의 커다란 두려움이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다. 이러한 두려움을 마주보느니 그것이 도달하기 전에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지속된다. 무덤덤해진다는 마음은 도대체 언제 찾아오는걸까? 친구가 일반 사람들은 평상시에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줬다. 아, 그렇구나. 이게 평범한게 아니구나. 감정을 추스리기 위해 언제나 노력해야하고, 생각이 깊어지지 않게 시선을 돌려야하고, 살아가기 위해 바로 코앞의 해야할 일들을 만들어야한다. 이런게 일상이고 평범한 것이다. 아니 사실, 더 많은 이들에게 이러한 것들이 평범한 일상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더이상 필요한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걸 궁금해도 변화하는 것 없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두려움과 함께하지 않길 바라고 오늘도 조용히 잠이 들길 원하며 더이상 날 놀라게할 소식이 없길 바란다. 아무 생각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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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9, 2025 at 6:41 PM
예술가인 한에서 예술가는 복종하기를 그만둔다. 오래된 감정을 감각으로 대체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가의 모든 작업은 입법적이다.
December 7, 2025 at 4:04 PM
어제는 머리가 아파왔었지만 오늘은 그래도 조금 나아졌다
December 7, 2025 at 3:01 PM
생각을 정리한다 마음을 들쑤신다
감정이란 것은 복합적이다. 다만 한가지의 감정만 내포하지 않는다. 기쁨도 슬픔 속에 파도치고 분노 속에서도 슬픔이 흘러간다. 감정이란 그의 강렬함으로 튀어오르고 또 다시 가라앉으며 여러 조각들을 꿰매어나간다. 그 사이사이 기억들의 부스러기들이 섞여들고 감촉을 만들어내며 피부를 덮어나간다. 외로움도 그러하다. 공허함 속에 감정들은 가득차있다. 외로움 속의 감정들은 오히려 그 어느 것도 우위를 차지하지 못해 더이상 아무것도 꿰매어지지 못하고 부스러기들이 흩어지며 모래알처럼 감정들이 부스러져나간다. 먼지처럼 떠다니는 감정들의 조각들은 그 어느 것도 강렬함을 가지지 못한다. 그 사이사이 기억들도 꿰매어지지 못해 자리를 잡지 못한다. 아마도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굴도 보이지 않던 그 프레임 속에서 나만의 목소리가 울리던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물방울이 새어나오고 차마 내쉬지 못한 숨들이 마음 속에 걸렸다. 너무나도 작은 으면 속에서 도저히 현실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만한 그 작은 화면 속에서 들썩이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볼 용기가 없었다. 내 이름만을 외치며 보고가고 싶었다고 이제 금방 보러갈 수 있을 줄 알았다고 외치는 내 소리만이 울렸다. 삶이 바쁘다고 만나서 할 말이 없다고 그렇게 보내버린 시간들이 야속했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과거의 내가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다. 저 멀리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나도 함께 울고 싶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방안에 혼자 덩그러니 화면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내가, 지금 당장 달려가지 못하는 내가 그리고 상황이 아니 변명하고 있는 내가 미웠다. 전화가 끊기고 바탕화면이 보였다. 조용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울음소리도 없었던 것처럼 들썩임도 없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 엄청난 변화가 견디기 힘들어 내 울음으로라도 내 방을 채워본다. 슬픔을 가지는 것이 차라리 나은 것인가. 차라리 슬픔의 강렬함 속에서 무엇이라도 잡고 있는 것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분노 속에서 사그리 태워버리는 것이 나은 것일까. 너무 많은 먼지들이 공중의 떠다녀 시선을 막고 그러나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것일까. 이 슬픔을 누구에게 띄울 수 있을까. 이 외로움을 누구와 함께 품어낼 수 있을까. 아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감정이 포화되어 머리를 두드린다. 잠으로 도망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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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6, 2025 at 9:59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