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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stephin.bsky.social
밥먹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과거, 미래와 구분되면서 둘을 향해 열려 있는, 매우 얇고 구멍이 숭숭 뚫는 막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매순간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 그 다름이 우리의 시간 경험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무언가에 놀라워 할때, 위협을 느낄 때, 어떤 통찰을 얻게 될 때 우리는 하나의 '순간'이 생각보다 훨씬 더 넓으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는다.

_메릴린 로빈슨, 조윤 옮김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 관하여>
December 6, 2024 at 11:17 AM
칼로타가 누구인지 얘기해주는 서점 주인 팝 레이벨은, 히치콕이 아르고너트 서점을 방문하고서 친구가 된 실제 서점 주인 로버트 D. 헤인스에게서 영감을 받아 만든 허구의 인물이다. "그 여자는 죽었어요." 레이벨이 말을 이었다. "어떻게요?" 스코티가 묻는다. "자기 손으로요." 레이벨은 그렇게 대답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할 이야기가 참 많죠......" 대본의 지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서점 내부는 어두워지고, 인물들은 실루엣으로 남는다."

_호르헤 카리온, 정창 옮김 <서점>
November 27, 2024 at 11:06 AM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먹을까' 혹은 '먹지 않을까' 하는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었다.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밥을 짓고 할머니에게 밥상을 차려주었다. 손을 대지 않으면 수저로 입가에 가만히 가져가보았다. 그것을 계속할 뿐이었다.
할머니는 '먹지 않겠다'는 선택을 이어갔다. 올바른 것도 그릇된 것도 아니었다. 받아들인다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세계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따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었다.

_무라세 다카오 <돌봄, 동기화, 자유>
November 25, 2024 at 1:29 PM
그는 자신의 삶 이외에도 우리의 미래를 보았고 그의 책들과 그에 관한 추억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보았다. 삶을 사랑해서 거기서 떨어질 수 없는 사람처럼, 죽음을 생각하긴 하지만 죽음이 아니라 삶을 상상하는 사람처럼 죽음 그 이후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그는 삶을 사랑하지 않았다. 삶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상황을 용의주도하게 준비하기 위해서 자신의 죽음 그 이후를 응시했다. 죽은 뒤에라도 돌연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나서 놀라지 않기 위해서였다.

_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이현경 옮김 <가족어 사전>
November 25, 2024 at 1:24 PM
사랑의 유대를 가장 빈번하게 발생시키는 것은 공감과 습관의 결합이다. 처음에는 탐욕이나 중독보다 선을 추구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하나의 필요로 변한다. 그러나 탐욕과 중독, 그리고 모든 악덕과 달리 애정의 유대에서는 두 개의 동기, 다시 말하면 선의 추구와 필요를 위한 탐구가 매우 쉽게 공존할 수 있다.
상호 간의 애착이 필요에 의해서만 구성된다면 두려운 일이다. (...) 인간이 선을 추구하고 그 선에서 필요한 것만을 찾는다면, 그때는 무시무시한 것이 존재하게 된다.

_시몬 베유, 박진희 옮김 <노동 일지>
November 25, 2024 at 1:07 PM
침묵에는 두 종류가 있다. 자신에게 침묵하는 것과 타인에게 침묵하는 것이다. 두 가지 형태 모두 우리를 똑같이 고통스럽게 한다. 자신에 대한 침묵은 우리 존재를 사로잡는 극도의 혐오감과 우리 영혼에 대한 경멸에서 기인하는데 말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비열한 침묵이다. 타인과의 침묵을 깨고 싶다면 우리 자신과의 침묵을 깨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을 증오할 어떤 권리도 없으며 우리 영혼의 생각을 막을 권리도 당연히 없다.

_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이현경 옮김 <작은 미덕들>
November 17, 2024 at 10:38 AM
'책을 가진 사람은 빛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도서관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그가 말했다.

_웬디 레서, 김마림 옮김 <벽돌에 말을 걸다>
November 16, 2024 at 11:59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