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볼 수 있듯 거품의 끝은 불황이었는데, 아직 인류는 덜 배웠나 봅니다.
역사에서 볼 수 있듯 거품의 끝은 불황이었는데, 아직 인류는 덜 배웠나 봅니다.
정직하게 정통성 시비를 걸 수도 있고(비트코인 SV), 해시레이트 장난(비트코인 캐시)으로 시세를 장난칠 수도 있고, 선채굴(비트코인 골드)로 장난칠 수도 있고, 심지어 허위 포크로 투자금을 먹튀할 수도 있어요(비트코인 플래티넘).
파라미터 하나 조작만으로 채굴 난이도를 조절, 악화를 손쉽게 만들 수 있는데, 이게 금일리 없잖아요.
정직하게 정통성 시비를 걸 수도 있고(비트코인 SV), 해시레이트 장난(비트코인 캐시)으로 시세를 장난칠 수도 있고, 선채굴(비트코인 골드)로 장난칠 수도 있고, 심지어 허위 포크로 투자금을 먹튀할 수도 있어요(비트코인 플래티넘).
파라미터 하나 조작만으로 채굴 난이도를 조절, 악화를 손쉽게 만들 수 있는데, 이게 금일리 없잖아요.
하지만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는 '본질적으로는 다르다'며 "가상화폐는 통화일 수도 있고, 교환 매개체일 수도 있으며 가치를 저장하거나 때로는 잃어버리는 자산, 즉 주식 같은 성격을 가질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거기다 통화로서의 자격도 갖추지 못했다고 했죠.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비트코인을 비롯한 크립토커런시는 하드포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는 '본질적으로는 다르다'며 "가상화폐는 통화일 수도 있고, 교환 매개체일 수도 있으며 가치를 저장하거나 때로는 잃어버리는 자산, 즉 주식 같은 성격을 가질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거기다 통화로서의 자격도 갖추지 못했다고 했죠.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비트코인을 비롯한 크립토커런시는 하드포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걸 보고 있으면 삽질의 역사를 쌓아올려 학문으로 만들고 배운 현대인들이라고 딱히 머리가 좋은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크립토커런시 때문입니다.
흔히들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이라고 합니다. 발행량과 가치가 고정되기 때문이죠.
이런걸 보고 있으면 삽질의 역사를 쌓아올려 학문으로 만들고 배운 현대인들이라고 딱히 머리가 좋은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크립토커런시 때문입니다.
흔히들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이라고 합니다. 발행량과 가치가 고정되기 때문이죠.
당시 촉한 내에서 금속화폐의 유통 지위가 절대 모자란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국고에 저렇게 현물만 쌓여있는 것은 사실상 계속 악화만을 내놓았던 화폐정책의 실패로 현물만을 쓸 수 밖에 없는 경제 상황으로 회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시 촉한 내에서 금속화폐의 유통 지위가 절대 모자란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국고에 저렇게 현물만 쌓여있는 것은 사실상 계속 악화만을 내놓았던 화폐정책의 실패로 현물만을 쓸 수 밖에 없는 경제 상황으로 회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때 방통이 유비에게 입촉을 설득하며 "현재 익주는 부유"하다고 이후 수많은 실책으로 경제가 급속도로 피폐해진거죠.
실제 논문을 보면 동오가 점령한 형주 일대에서 촉한의 화폐가 많이 나오는 등 촉한 수립 이후 익주는 동오에 경제적으로 예속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참조 : 张翼, 「孙吴钱币的出土情况与“蜀钱吴用”现象」, 『东南文化』)
한때 방통이 유비에게 입촉을 설득하며 "현재 익주는 부유"하다고 이후 수많은 실책으로 경제가 급속도로 피폐해진거죠.
실제 논문을 보면 동오가 점령한 형주 일대에서 촉한의 화폐가 많이 나오는 등 촉한 수립 이후 익주는 동오에 경제적으로 예속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참조 : 张翼, 「孙吴钱币的出土情况与“蜀钱吴用”现象」, 『东南文化』)
그런데 이것도 참 웃긴게 유비가 "성도를 점령하면 유장의 재물을 여러 장병들에 전부 나누어 주고 자기는 한푼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놓고 군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유파의 조언을 받아들여 악화를 주조했다는것인데요.
당시 중국이 비록 경제학에 대한 무지가 가득하던 시절이고 중국엔 늘 사람이 너무 많아(...) 가치가 낮았단걸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죠.
그런데 이것도 참 웃긴게 유비가 "성도를 점령하면 유장의 재물을 여러 장병들에 전부 나누어 주고 자기는 한푼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놓고 군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유파의 조언을 받아들여 악화를 주조했다는것인데요.
당시 중국이 비록 경제학에 대한 무지가 가득하던 시절이고 중국엔 늘 사람이 너무 많아(...) 가치가 낮았단걸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죠.
이러면서 조선 경제가 단 6개월만에 나락으로 갔습니다.
그런데요. 이 직백오수는 50년을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직백오수에 이어 직일소전, 태평백전, 태평백금 등 지속적으로 더 심한 악화를 발행해 시뇨리지만을 땡겨왔습니다. 촉한 경제는 파탄이 났죠.
이러면서 조선 경제가 단 6개월만에 나락으로 갔습니다.
그런데요. 이 직백오수는 50년을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직백오수에 이어 직일소전, 태평백전, 태평백금 등 지속적으로 더 심한 악화를 발행해 시뇨리지만을 땡겨왔습니다. 촉한 경제는 파탄이 났죠.
당백전 발행으로 16배 가량의 주조차익(시뇨리지)을 챙긴거죠. 만약 국가가 액면가를 보증하기 위해 충분한 기초자산을 확보했다면 양적 완화의 효과가 발생하고 국가는 경복궁에 쓸 물자를 마련함과 동시에 경제가 살아날 수 있었겠지만, 당시 조정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당백전 발행으로 16배 가량의 주조차익(시뇨리지)을 챙긴거죠. 만약 국가가 액면가를 보증하기 위해 충분한 기초자산을 확보했다면 양적 완화의 효과가 발생하고 국가는 경복궁에 쓸 물자를 마련함과 동시에 경제가 살아날 수 있었겠지만, 당시 조정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흔히들 우리는 이 당백전을 '인플레이션을 일으켰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배웁니다만, 실제로는 금속화폐가 갖는 물질적 가치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악화가 만들어진 것이죠.
예를 들어, 상평통보의 경우 보통 구리 함량은 2.3~2.5g이었습니다. 하지만 당백전은 명목가치는 100배지만 구리는 6~8배 수준에 그쳤습니다. 당시 대원군의 목적은 꽤나 심플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네. 양적 완화입니다. 이와 함께 기초자산을 확보해야 하죠. (금/은) 이렇게 되면 왜 욕을 먹으면서도 당백전, 당오전을 발행했는지, 방곡령 등으로 해관세 확보에 목을 맸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흔히들 우리는 이 당백전을 '인플레이션을 일으켰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배웁니다만, 실제로는 금속화폐가 갖는 물질적 가치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악화가 만들어진 것이죠.
예를 들어, 상평통보의 경우 보통 구리 함량은 2.3~2.5g이었습니다. 하지만 당백전은 명목가치는 100배지만 구리는 6~8배 수준에 그쳤습니다. 당시 대원군의 목적은 꽤나 심플했습니다.
직백오수란 오수전의 100배 가치를 액면가로 갖는 동전입니다. 그럼 또 오수전은 뭘까요. 오수전이란 무게가 5수(五銖)인 동전(錢)을 일컫는 말로, 한무제때부터 주조되기 시작한 공전입니다.
100배 가치의 동전 그러면 국사를 조금이라도 봤던 사람은 등줄기에 쎄함이 쫙 올라오는데요. 네. 바로 당백전과 같은겁니다. 땡전 한 푼 없다 할때 땡전이 바로 당백전인데요. 우리는 화폐 정책 실패 사례로 배우죠.
직백오수란 오수전의 100배 가치를 액면가로 갖는 동전입니다. 그럼 또 오수전은 뭘까요. 오수전이란 무게가 5수(五銖)인 동전(錢)을 일컫는 말로, 한무제때부터 주조되기 시작한 공전입니다.
100배 가치의 동전 그러면 국사를 조금이라도 봤던 사람은 등줄기에 쎄함이 쫙 올라오는데요. 네. 바로 당백전과 같은겁니다. 땡전 한 푼 없다 할때 땡전이 바로 당백전인데요. 우리는 화폐 정책 실패 사례로 배우죠.